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화면 캡처
전태일 열사가 떠난 지 56년. 그러나 아직도 특수고용직,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과 불공정으로 자기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은 사라지고 노동만 존재하는 사회란 없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꾼다.
소년공 이재명이 제철과일 못 먹어 서럽고, 쓰레기 치우러 다니면서 남들 시선에 열등감 느끼고, 공장에서 일하다 팔이 굽어 좌절했다면, 요즘의 가난한 집 청년들은 그에 더해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상처 입고, 부동산 격차로 무시당하고, 어릴 때 예체능 학원 다녀보지 못해 박탈감 느끼고, 그렇게 부모로부터 경험자본과 문화자본을 물려받지 못해 생기는 간극으로 좌절한다.
이 격차는 카스트제도처럼 학벌 격차로 이어진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은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한 해 고교졸업생 중 6%만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 94%는 비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압도적 다수의 청년이 학벌을 계급장 취급하는 사회에서 생존투쟁을 벌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중소기업에 들어가 투명인간처럼 살아간다. 이전과는 다른 구조화된 불평등의 양상이다.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청년들에게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다그치거나 섣불리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고 훈계하는 것이 얼마나 사려 깊지 못한 방식인가.
매 순간 상처 입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좌파니 우파니 하는 소리가 얼마나 뜬구름 같은 소리인가. 대다수 청년의 마음을 돌리는 일, 변화의 정치에 함께하도록 손 내미는 일. 아주 사려 깊고 끈기 있게 할 일이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화면 캡처
아름다운 청년의 메시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는 생산의 수단이나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다. 사람보다 큰 가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야간노동자들이 '달빛노동'이라는 이름으로 24시간 기계처럼 일하고 있다. 살기 위해 죽어야 하는 이 역설의 현실을 끊어내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규칙을 어겨 생기는 이익이 제재보다 훨씬 큰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물론 고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반적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 전태일 열사에게 50년 만에 무궁화훈장을 추서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이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노력의 결과물을 빼앗는 관계가 아닌, 서로 존중하고 어우러져 함께 세상을 살기 위함이다.
특수고용직에 대해 정부에서 몇 가지 지원정책을 내놨지만 사각지대는 컸다. 중소기업 노동자들도 불황의 장기화로 실직자가 될까 애가 탄다. 자영업자들의 길고 긴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일자리 소멸에 대비해 국민의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오직 노동의 대가만으로,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혜만으로 삶이 유지되는 사회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지속불가능하다.
토지라는 공동체의 유한자원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불로이익, 탄소 배출 등 환경 훼손으로 사회에 피해를 주며 생기는 이익, 국민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로부터 대가 없이 거둬가는 이익의 일부나마 국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