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산업은행 회장 내정자
산업은행 노동조합이 신임 수장으로 내정된 박상진 회장의 앞길을 막아섰다. 노조는 박 내정자가 본점의 부산 이전을 철회하지 않으면 출근 저지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내정자는 1990년 산업은행에 들어가 30년 동안 일한 첫 내부 출신 인사다.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내부 출신이라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으며, 부산 이전 완전 철폐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박 내정자에게 취임 즉시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하고 전임 회장이 단행한 불합리한 조직 개편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이러한 요구안을 박 내정자에게 직접 전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직원 달래기와 사내 문화 개선이라는 과제
노조의 요구는 단순히 본점 이전 철회에만 머물지 않는다. 직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민주적인 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임금과 복지 등 전반적인 노동 환경을 개선하라고 주장한다. 상생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내부 결속을 다지는 일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노조는 박 내정자가 첫 내부 출신이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은행에 단 한 발짝도 들어올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국가 경제와 사회적 측면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정부와 지자체는 수도권에 집중된 부와 인력을 분산해 지역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사회적 명분을 내세운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향하면 동남권 지역에 새로운 금융 생태계가 조성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경제적 논리도 작용한다. 해양 및 항만 산업과 연계한 특화 금융을 발전시켜 부산을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지역 사회에 공급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타당성을 확보한다.
금융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가 2023년 12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산은이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산은 노조가 반대하는 경제적 명분과 현실
반면 노조가 이전을 반대하는 배경에도 뚜렷한 경제적 명분이 존재한다. 산업은행의 주요 업무인 기업 구조조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신디케이트론 등은 대규모 자본과 긴밀한 정보 교류를 바탕으로 한다.
주요 시중은행 본점과 대기업, 글로벌 금융 기관, 대형 회계 및 법무법인이 모두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국책은행만 지방으로 옮기면 업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금융 네트워크와 단절돼 산업은행 본연의 경쟁력이 훼손되며, 이는 곧 국가 전체의 금융 및 산업 지원 역량 약화로 이어진다는 것이 노조의 논리다. 실제로 이전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핵심 인력이 일부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구조조정 전문가의 시험대가 된 조직 안정화
박상진 내정자는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법에 정통한 정책금융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기아그룹,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등 굵직한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팀을 거쳤고, 법무실장과 준법감시인 등 주요 보직을 지냈다.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과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이끌 적임자라는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는 역설적으로 산업은행 자체의 내부 갈등을 구조조정하고 봉합하는 일이다. 정부의 정책 기조와 노조의 생존권 요구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그의 경영 성패를 가를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