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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칼럼] 장애, 예술에 말을 걸다➆ 느림은 결핍 아닌 또 다른 리듬
  • 김형희 화가
  • 등록 2026-03-18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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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화가가 휠체어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이동이 불편해 팔레트를 무릎 위에 두고 있다.(김형희 화가 제공)  

마감일에 맞추는 능력, 빠른 제작, 즉각적인 결과. 우리는 이것을 전문성이라 부른다. 느린 작업은 종종 미숙함이나 준비 부족으로 해석된다. 이 판단은 특정한 몸과 환경을 전제로 한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가정, 그 가정이 너무 오랫동안 의심받지 않았다.

 

속도는 언제나 권력과 연결된다. 공모 일정, 레지던시 기간, 공연 제작 스케줄 등 이 구조 안에서 느림은 설명해야 할 이유가 된다. 누가 기준을 정하는가, 누가 기다릴 수 있는가, 누가 기다려주지 않는가. 빠름을 기준으로 한 제도는 느린 몸을 자동으로 배제시킨다. 

 

어떤 몸은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고 어떤 감각은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 어떤 예술가는 하루에 몇 시간씩 집중할 수 없어 짧은 단위로 작업을 나누어야 한다. 이 방식은 누구에겐 비효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구에겐 무리하지 않기 위해, 지속하기 위해 선택한 리듬이며 실제로도 매우 정교한 전략이다. 

 

또한 반복은 많아지고 수정은 잦아진다. 한 번에 결정을 내리지 않고 감각이 충분히 축적될 때까지 시간을 쓴다. 이 과정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진전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버릴 것인가. 내부에서는 계속해서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다. 느림은 판단을 미루는 것이 아닌, 판단을 깊게 하는 다른 밀도 방식이다.

 

'조금 더 시간을 주자, 조금 더 기다려주자.' 이런 언어는 느림을 예외로 만든다. 우리는 종종 느린 예술을 '배려의 대상'으로 분류한다. 느린 창작은 배려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당한 방식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빠름과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우리는 어떤 속도의 예술계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속도를 표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예술계의 구성원은 달라진다. 느림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많은 예술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개인의 포기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속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며 저항의 형태일 수 있다.

 

모든 것을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잊어버리는 흐름 속에서 느린 창작은 다른 시간대를 만든다. 이 시간대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완성보다 지속이 중요해지며 이 느린 시간은 예술가를 보호하고 작품을 성숙시킨다.

 

예술이 여러 속도를 허용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예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빠름만이 전문성이 아닌 것처럼 느림 역시 하나의 능력이며 결핍이 아닌 또 다른 리듬이 된다.



김형희 화가

덧붙이는 글

김형희 화가는 성균관대에서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CHA의과학대 통합의학대학원에서 임상미술치료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상명대에서 공연예술경영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07년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설립하고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을 지냈다. 지금은 케이디아트컴퍼니(K-Dart Company)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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