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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불탄공장 4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4-26 00:00:01
  • 수정 2025-04-26 14: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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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는 서원의 몸이 닿아 있는 유리 파편을 건드렸다. 촤락, 유리 파편이 떨어지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 드디어 깨우가 그를 찾았고 몸을 더듬었다. 

“유리 사장님? 거기 있지요, 아파요?” 

그녀는 흰 눈으로 젖은 손을 더듬어 그의 얼굴을 찾았다. 그녀는 핸드폰에서 단축키를 눌렀다. 

“재이, 여기, 사장님 있어요, 아파요, 이리로 와.”

보이지 않는 그녀가 여기저기 누르자 예리한 유리 끝이 그의 점퍼를 꿰뚫어 점퍼에서 흰 깃털 충전제가 솟구쳤다. 흰 깃털이 눈과 뒤섞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퍼의 후드로 작은 머리통 전체를 뒤집어쓴 재이가 빠른 걸음으로 벌판을 가로질러 왔다. 

“야, 이서원, 정신 차려봐.”

재이가 그의 뺨을 철썩 때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재이는 119에 전화해 구조 요청을 한 후 깨우에게 컨테이너로 돌아가라고 했다.

“걱정, 많아요. 같이 있어요?”

“아니, 깨우가 여기 있으면 더 복잡해져, 가 줘요.”

재이는 깨우의 양팔을 잡아 몸을 녹색 컨테이너 방향으로 돌렸다. 깨우의 팔을 잡고 걸어가 함께 녹색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작은 창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잠시 후 재이가 검은 우산과 수건을 들고나왔다. 그녀는 서원의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고 우산을 씌웠다.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수건으로 젖은 눈과 뒤섞인 피가 흐르는 얼굴을 닦았다.

“야, 이서원. 이럴 거면서 뭘 같이 살자 그래.”

“…….”

대답이 없자 재이는 그의 뺨을 철썩 때렸다. 우리는 일제히 재이를 노려보았다. 미미하지만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

“야, 정신 안 차리지.”

“…… 반, 말하지 마.” 

“하, 안 죽었네, 하하하.”

재이는 웃었다. 징징거리며 우는 건 질색이어서 소리 내 웃었다. 우리는 그 소리가 거슬렸다. 흩날리는 눈 사이에 묻혀 웃음소리는 젖은 겨울처럼 눅눅했다.

잠깐 사이 날이 풀렸다.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변해 떨어졌다. 벌판 끝에서 사이렌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달려왔다.


우리는 우리더미의 수, 질량, 부피, 밀도를 몰랐다. 우리는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질투와 시기심이 적잖이 있었다. 우리는 침묵을 견디질 못했고 고요한 순간을 불안하게 여겼다. 우리는 불안에 민감했다. 불안할 때면 유독 소란스럽게 떠들어댔고 쉼 없이 움직였고 들썩거렸다. 대체로 산만하고 음울하고 축축했다. 

우리는 단정하고 깨끗한 재이를 질투했다. 밉상이야, 얌체처럼 생겼어, 좀 이쁘긴 하지, 저런 애는 팔자가 사나워, 저렇게 까탈스러운데 어떤 사내가 좋아할까, 결혼이나 할까. 

우리는 재이가 벌판을 지나칠 때면 그녀의 발목을 긁고 지나쳤다. 교복을 입던 소녀 시절에는 교복 리본 매듭을 풀었다. 흰 목덜미를 드러낸 단정한 단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깨끗한 목덜미를 할퀴었다. 그러면 선뜩함을 느낀 재이는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우리의 손을 탔지만, 재이는 겁먹지 않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걸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겁을 주고 해코지하고 싶었고 울리고 싶었다. 서원이 빨간 장미가 빼곡하게 꽂힌 꽃바구니를 들고 벼락같은 말을 내뱉었을 때 우리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탁 굴렀다. 

“같이 살자, 나랑 결혼할래?”

우리 중 특히 유리공장 소년 시절부터 서원에게 집착했던 더미들은 냅다 재이의 뺨을 후려쳤다. 재이의 뺨이 붉어졌다. 그녀가 열에 들뜬 뺨에 손을 댄 채 그를 쏘아보았다. 

“결혼을 왜 해?”

“너랑 나 닮은 아이, 예쁠 거 같아서.”

서원은 검지로 제 눈썹을 비비며 멋쩍은 듯 웃었다.

“미쳤어? 이런 비정한 세상에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해?”

“남들도 다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살아.”

“그럼, 남들이랑 결혼하던가.”

“한 번에 허락하면 윤재이가 아니지. 매달 말에 고백할게.”

“그래? 그럼 다음부턴 꽃 대신 꽃등심으로 가져와.”

“어, 그럴게.”

하여간 밉상이었다. 그렇게 매달 말, 재이는 서원 할머니와 꽃등심을 먹었다. 우리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제 돈으로 산 것처럼 아주 생색을 내며 상추 위에 꽃등심을 척 올려 쌈을 싸서 서원 할머니의 입에 넣어주는 재이의 모습이 가증스럽고 얄밉고 질투가 나 회까닥 돌 것 같았다. 재이를 좋아하는 더미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적어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묻혔다.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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