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연합뉴스)
기약 없이 표류하던 국민연금 개혁이 마침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국회는 20일 본회의를 열고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재석 277인 중 찬성 194인, 반대 40인, 기권 43인으로 가결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주재하에 여야 원내대표가 극적인 합의안을 도출해 낸 결과다. 이번 개정안 통과는 2007년 2차 개혁 이후 무려 18년 만에 이뤄낸 값진 결실이며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역대 세 번째로 기록되는 역사적인 사회적 합의다.
'더 내고 더 받는' 모수개혁의 뼈대 18년 만에 마침표
이번 연금개혁의 핵심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끌어올린 모수개혁이다. 국민이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오르며 은퇴 후 돌려받는 연금액의 비율인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조정된다.
1988년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은 두 차례의 개혁을 거쳐 2028년 40%까지 낮아질 예정이었으나 이번 합의를 통해 노후 소득의 보장성을 일정 수준 다시 끌어올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1998년 이후 27년 만에 단행된 보험료율 인상이다. 당장 내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8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인상해 2033년 13% 도달을 목표로 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설명처럼 월 소득 100만 원인 가입자의 경우 기존 매달 9만 원을 내고 은퇴 후 41만5000원을 받던 구조에서 앞으로는 13만 원을 내고 43만 원을 받는 구조로 바뀐다. 국민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경제적 충격을 분산시킨 절충안이다.
27년 만의 인상…기금 소진 15년 연장, 급한 불 껐다
이번 4%포인트의 보험료율 인상 결단은 국민연금의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기금 고갈 시점을 크게 늦추는 성과를 가져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당초 예상되었던 기금 소진 연도가 무려 15년이나 뒤로 미뤄져 2071년까지 안정적인 기금 운용이 가능해졌다.
당장 수년간은 쌓여있는 적립기금을 헐어 쓰지 않고 국민들이 납부하는 보험료 수입만으로도 연금 지출을 온전히 충당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셈이다.
단순한 재정 수치 조정을 넘어 연금 제도에 대한 짙은 불신을 걷어내기 위한 장치들도 눈에 띈다. 가장 큰 성과는 국민연금법 제3조의 2를 개정해 '국가의 연금 지급 책임'을 법적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국가가 반드시 책임지고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명확히 함으로써 자신이 낸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청년세대의 근본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는 강력한 안전판을 마련했다.
출산·군복무 크레디트 확대…수명 연장 아닌 '준적립방식' 전환
저출생 기조와 청년층의 경력 단절을 보완하기 위한 보장성 강화 조치도 대폭 확대됐다. 기존 '둘째 자녀'부터 적용되던 출산 크레디트는 '첫째 자녀'부터 12개월을 인정하도록 개편됐고 기존 50개월로 제한됐던 상한선도 과감히 폐지됐다.
군 복무 기간에 대한 가입 인정 기간 역시 현행 최대 6개월에서 12개월로 두 배 늘어났다. 아울러 저소득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을 늘려 사각지대 해소에도 힘을 실었다.
이번 개혁의 역사적 의의는 연금 운영 방식에 대한 철학적 대전환에 있다. 현재 1200조 원 이상의 막대한 적립기금을 보유한 한국은 기금이 계속 쌓이고 있는 '골든타임'에 선제적 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를 오롯이 부양하는 전통적 부과방식(pay-as-you-go)의 한계를 벗어나 기금 운용 수익과 보험료 수입이 재정의 양축으로 기능하는 '준적립방식(partially funded)'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울트라 고령사회 대비…구조개혁 마스터플랜 향한 출발점
한국은 2050년 노인 인구가 40%에 달하고 207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울트라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적립기금이 없다면 미래 청년세대는 20%가 넘는 살인적인 보험료율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개혁으로 기금 고갈 전 구조개혁을 준비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거대한 인구 구조 변화의 충격을 기금 운용 수익으로 흡수하는 '셀프 부양'의 탄력적 방어막을 세우게 되었다.
이번 개정안 통과와 함께 국회는 13인으로 구성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설치안도 의결했다. 모수개혁으로 벌어들인 시간 동안 재정안정화 조치를 넘어 국민·기초·퇴직·개인연금 등 다층 노후소득체계 전반을 뜯어고치는 과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번 18년 만의 개혁은 제도의 '완결'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연금을 향한 험난한 로드맵의 '출발점'이다. 세대 간 신뢰를 잇는 든든한 사회적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해, 이제 우리 사회는 더욱 성숙한 구조개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