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노동조직 '렌고'가 발표한 1차 집계 결과, 평균 임금 인상률이 무려 5.46%를 기록했다. [뉴스아이즈 AI]
"모두 하나가 되면 무섭지 않다. 어두운 밤에도 서로 손을 잡고 나가자."
1955년 일본의 노동운동가 오다 가오루가 외쳤던 이 한마디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경제의 봄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주문이다. 최근 일본 경제의 핫이슈는 단연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임금 인상률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매년 봄 일본 전역을 뜨겁게 달구는 '춘투(春鬪)'가 있다.
춘투는 '춘계 생활투쟁'의 줄임말로, 매년 봄(2~3월) 일본의 노동조합들이 연대하여 기업을 상대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조건 개선을 일제히 요구하고 협상하는 장을 말한다.
기업별 노조 체제가 강한 일본에서는 개별 노조의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미들이 힘을 합쳐 커다란 먹이를 옮기듯, 1년 중 같은 시기에 전국의 노조가 연대해 교섭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가 주축이 돼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릴레이 협상을 이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물가를 이겨라"…33년 만에 중소기업도 5% 벽 돌파
2025년 올해 춘투는 유독 특별하다. 15일 일본 최대 노동조직인 '렌고'가 발표한 1차 집계 결과, 평균 임금 인상률이 무려 5.46%를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합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 임금 상승률도 5.09%로, 1992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5%의 벽을 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노사가 한마음으로 임금을 대폭 올리는 배경에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이 있다. 지난해에도 평균 5.1%의 임금을 올렸지만, 가파른 물가 탓에 체감하는 '실질임금'은 오히려 2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월급봉투는 두꺼워졌는데 막상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줄어든 셈이다. 요시노 도모코 렌고 회장이 "임금, 경제, 물가를 안정된 순항 궤도에 올리는 춘투를 만들고 싶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춘투의 나비효과…'잃어버린 30년' 마침표 찍을까
춘투는 남의 나라 노사 협상 이야기라 치부하면 안 된다. 춘투에서 결정된 임금 인상률은 꽁꽁 얼어붙었던 일본 소비재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핵심 동력이다. 월급이 오르면 지갑이 열리고, 이는 곧 기업의 실적 개선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거대한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대폭적인 임금 인상 타결은 일본은행(BOJ)이 오랜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탈출해 금리 인상 등 통화 정책을 정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이 된다.
투자자라면 이제 벚꽃 피는 일본의 봄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춘투'의 결과표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올해 춘투가 이끌어낸 임금 인상이 끈질긴 실질임금 마이너스의 고리를 끊어내고 진짜 '소비 호황'을 불러올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