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앵 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 보는 사이이다
서로를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부란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죄 없는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문정희 시인의 시 '부부' 전문
이 시는 문정희 시인의 시집 <다산의 처녀>에 실려있다.
며칠 전 지방에 볼일이 있어 새벽길을 나서는데 너무 추워 고민하다가 남편 내복 하의를 안에 입은 적이 있다. 좀 크긴 해도 입는 순간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때 이 시가 생각나 웃었다.
부부는 멀찍이 떨어져 누워 있다가도 모기 소리 들리면 합세하여 잡고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다. 그러면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떠올리는 낭만보다는 생활에 가까운 관계다.
알랭바디우는 <사랑예찬>에서 '사랑은 사건(event)으로 시작하지만 감정의 뜨거움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실천'이라고 했다.
부부는 '사랑'으로 시작해도 '불꽃'이 아닌 반복되는 '충실성'과 '존재의 지속'임을 알 수 있다.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수많은 반복과 시간의 공유 속에서 서로의 삶에 문신처럼 깊이 흔적을 남긴다. 가벼운 "거미줄인지" 무거운 "쇠사슬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서로 묶여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도 상대방처럼, 상대방도 나처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쉬운 언어로 쓰여있지만 삶의 성찰이 느껴지는 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