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차고 넘치는 옷, 쌓이는 책, 유통기한 임박한 통조림과 컵라면, 추억이란 이유로 버리지 못한 사진과 편지까지.
영화 <카모메식당> 원작자인 무레 요코의 소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라곰에서 나왔다. 부산 대표 서점 '주책공사'의 이성갑 대표가 강력 추천한 이 책은, 물건과 공간을 매개로 인간 관계와 삶의 방식을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전해온 무레 요코는 이번에도 특유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인 물건들 뒤에는 불안정한 삶과 꼬여버린 관계들이 숨어 있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피규어를 포기하지 못하는 예비 남편, 화려한 하이힐과 화장품에 집착하다 가족을 떠난 며느리, 반복적으로 물건을 사들이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이다.
그들은 우리와 닮아 있어 묘한 공감을 자아낸다. 책은 물건과 추억, 공간과 가치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질문한다. 무엇을 버리고 간직할 지 선택하는 과정은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일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물건에 집착한다. 오래된 옷조차 버리지 못하는 언니, 방 한가득 불륜의 추억을 쌓아둔 아버지,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과 컵라면을 쌓아두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집착은 불안정한 삶에서 비롯된다.
무레 요코는 이들의 이야기를 물건과의 관계로 얽힌 문제로 보고 물건에 대한 집착을 끊어냄으로써 질질 끌어온 삶의 문제들을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남편의 방을 정리하던 아내는 상대방의 내면과 가족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는 서로 다른 취향과 가치관을 한 공간에 담아내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들은 단순히 물건 정리를 넘어 삶의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난 무레 요코는 니혼대 예술학부를 졸업한 뒤 광고회사와 편집 프로덕션에서 일했다. 1984년 데뷔 이후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작품들로 일본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요코 중독'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국내에서는 《카모메 식당》,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작품은 경쾌하고 따뜻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번역가 이수은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다양한 통번역을 하며 일본문학 번역가로 자리 잡았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수상한 목욕탕》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