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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로 걸어 들어가 죽은 사십 대 남자의 혼을 봤어.”
“네.”
재이는 파란 들통에서 곡식 한 줌을 쥐어 허공에 흩뿌렸다.
“어린 소녀의 혼령도 봤지.”
“네.”
재이는 건성으로 대답하곤 팥과 콩을 휘릭 던지고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
우리는 공장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곧장 계단을 올랐다. 계단 아래 지하에는 어른 남자 키 높이만큼 물이 차올랐다. 할머니와 재이는 복도를 걸어가 어느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뚫린 지하가 보이는 곳이었다. 창으로 낸 커다란 사각형 틀 사이로 겨울 낮의 햇빛이 들어왔다. 물속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윤기 흐르는 몸을 빛내며 유영했다. 불에 탄 채 폐쇄된 공장은 거대한 시멘트 수족관이 되었다. 우리는 물고기가 압도적으로 많아 이곳을 좋아했다. 우리는 수영장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듯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수면에 닿은 빛처럼 우리는 낱낱이 흩어져 물고기 사이를 미끄러지다 물 밑에서 합류했다. 올 때마다 빼곡하게 자란 연녹색 수중 식물을 스치며 유영했다.
재이는 벽 쪽에 붙여둔 나무 상자에서 뜰채를 꺼내 할머니에게 주고 자신은 물고기 그림이 그려진 플라스틱 원형 통을 들었다. 수면 위로 뜨는 사료를 한 줌 흩뿌려주자 물고기들이 맹렬하게 모여들었다.
할머니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물고기 사이에 뜰채를 넣어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우리는 뜰채에 올라탔다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파란 들통에 물고기 세 마리를 담았다. 뜰채를 반대로 잡아 나무 손잡이로 파닥거리는 물고기의 머리통을 후려쳐 기절시켰다. 할머니는 엉덩이를 들어 무릎을 폈다가 끙, 소리를 내며 다시 주저앉았다.
“분명히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는데 싹 다 사라졌어.”
재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사료도 번갈아 던져주며 공장 벽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내 생각엔 저기 철탑에, 그 전기가 돌던 날, 확 빨려들어 감전됐거나 녹아버린 거 아닐까.”
할머니의 말이 맞았다. 철탑 29호부터 33호까지 세운 후 시범으로 10분간 전력을 송출했다. 철탑 29호의 전선이 활선으로 바뀌던 순간, 불탄 공장의 눅눅한 벽에, 늪처럼 물이 찰박거리던 공장 바닥에 흐르던 전기 배선공들의 그것이 강력하게 끌어당겨져 철탑 아래 떨어졌다. 최초의 더미 위로 후룩 떨어지듯 더미들이 스며들었고 붙었다. 물고기와 소녀의 기억과 흔적이 더미에 흡수되었다. 기억이 무섭게 증폭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우울과 공포가 살아나 그때 우리는 겁에 질려 침묵했다.
“그만 가요.”
재이는 할머니 뒤에서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켜 세워준 후 파란 들통을 들었다.
“저녁에 생선 구워 줄 테니 와.”
“비려서 싫어요.”
재이는 이곳에서 잡은 물고기로 하는 생선 요리에 질겁했고 입도 안 댔다.
“그럼 간장에 졸여줄게. 그, 깨우랑 같이 와. 요즘 통 안 보이더라.”
“바쁠 텐데요.”
“허리 마사지해주는 손맛이 간절해서 그래.”
“물어볼게요.”
재이는 계단에서 앞질러 내려가며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쉬운 듯 물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공장 출입문을 나가려다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면 우리는 흘러가다 멈췄다. 할머니는 검게 탄 외벽과 바닥을 번갈아 보곤 머리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우리는 괜히 겨울 갈대를 툭툭 건드렸다. 바싹 마른 갈대는 끊어질 듯 휘청거렸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