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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소요 6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9-20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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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붉은 꽃이 그려진 양산을 휘두르는 것을, 잠들어 있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리는 것을, 목선에서 내려서는 여자를 양산으로 두들겨 패는 것을 우리는 말없이 봤다. 아버지는 더 이상 목선에 여자를 태우지 않았고 술을 마시면 밧줄로 때렸다. 여자는 왜 자신을 안 믿고 돈에 홀려 모래를 팔아먹는 사람들 말만 믿느냐고 대들었다. 여자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녹색 술병으로 팔다리에 멍든 밧줄 자국을 문지르다 공판장에 사람이라도 보이면 마당 끝에 서서 주민들을 고발하겠다고 악을 썼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금세 자라 어깨로, 어깨 아래로, 허리로 치렁치렁 흘러내렸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자르지도 않았고 마당에 막자란 잡풀이 우리 종아리를 긁어도 내버려 두었다. 여자는 소요에게 공판장에서 술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소요는 여자에게 다가가 여자의 뺨을 휘갈겼다. 술을 마시니깐 아무도 엄마 말을 안 믿는 거야. 그걸 몰라? 여자는 내가 차려온 밥상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버지는 잡은 생선을 던져주고 공판장 뒷방에 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노름했다. 나는 연탄불에 우럭을 구워 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불을 말고 누워 있던 여자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여자가 가느다란 손으로 젓가락을 움켜쥐고 재빠르게 우럭의 눈알을 쏙쏙 빼 입 속에 넣었다. 나는 여자가 생선의 눈알을 입에 넣을 때 번들거리던 눈빛을 보고 소스라쳤다. 생선의 눈알만을 빼먹던 여자는 점점 줄어드는 해안가 모래밭에 앉아있었다. 절망을 삼킨 것처럼 고개는 허공을 향해 쳐들었고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여자는 섬에서 사라졌다. 아버지는 목선으로 인근 바다와 모래를 모두 뒤졌고 훑었다. 소요는 여자가 모래를 퍼 올리던 선박의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선박의 기사들이 여자를 빼돌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선박이 올 때마다 인부들과 몸싸움했다. 여자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아버지는 물때를 놓쳤다. 두 번째 썰물이 시작되어서야 바다로 나갔다. 어떤 때는 새벽까지 공판장 뒷방에서 술을 마셨다. 저녁에 일어나 소요의 침묵을 견딜 수 없을 때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소요는 생선 비린내를 싫어했다. 특히, 살이 파헤쳐지고 뼈와 내장만 남은 접시를 건들기도 싫어했다. 우리에게 생선 외에 다른 반찬은 없었다. 생선은 아무리 바싹 구워도 내장은 늘 젖어있었고 축축했다. 나는 생선의 뼈와 내장을 수챗구멍에 버리고 접시를 오래 닦았다. 수챗구멍에 걸린 생선 뼈에 뒤엉킨 여자의 머리카락을 집어낼 때면 뒤가 선뜩선뜩했다. 

소요와 내가 섬의 반대편에 있는 분교로 가기 위해 산자락을 걸어 가다보면 섬 여자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삼킨 듯 입을 꼭 다물고 말없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여자들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소요는 눈을 내리깔았고 침을 뱉었다. 소요는 공판장 집의 아들을 때리고 금고에서 돈을 꺼내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여객선을 타고 도시로 갔다. 코에 솜뭉치를 끼운 아이 손을 잡고 공판장 여자가 목선으로 찾아왔다. 소요가 공판장 금고에서 꺼내 간 액수만큼의 돈을 받아 쥔 여자는 아버지에게 소요를 내보내라고 충고했다. 아버지가 그물에서 생선을 빼던 손을 멈추고 쏘아보자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뒤돌아섰다. 나는 혼자 산자락을 걸어 올라가 분교에 다녔다. 산자락 위에 사는 과부는 터를 넓혀 민박집을 짓고 있었다. 목재를 쌓아놓은 곳에 기대앉아 바다를 보았다. 넓게 출렁거리는 바다 전체에 소요의 얼굴이 가득가득 넘쳐났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물 마시듯, 물 마시듯이 소요가 보고 싶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올 때마다 목재 더미에 앉아 우리 집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먼 바다에서 섬으로 다가오는 여객선을 보았다. 안쪽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 씨가 여태 못 잊는 거 아냐, 오늘도 새벽까지 배에서 양산을 펴놓고 술을 마시고 있던데, 어디 그이뿐이야, 그년 보며 침 흘리던 놈들 죄 못 잊겠지, 침만 흘렸어? 최 씨랑 붙었다며? 내가 언제? 그런 것 같다고 했지, 뭐 여건만 됐다면 그러지 않았겠어? 그게 그거랑 같아? 여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나는 그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목재 더미에서 일어나 몸을 숙여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선착장으로 다가온 여객선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버지 뒤로 모자를 쓴 소요가 보였다. 나는 산 흙을 미끄러뜨리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모자의 그늘에 가려진 소요의 얼굴은 쇳조각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계속- 


박정윤 소설가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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