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문구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시가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정지용의 「풍랑몽(風浪夢)1」은 조만간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그 기대와 염려가 섞여 있어 변화의 시기에 큰 울림을 준다.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올 때
포도(葡萄)빛 밤이 밀려 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물 건너 외딴 섬, 은회색(銀灰色) 거인이
바람 사나운 날, 덮쳐 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창 밖에는 참새떼 눈초리 무거웁고
창 안에는시름겨워 턱을 고일 때,
은고리 같은 새벽달
부끄럼성스런 낯가림을 벗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외로운 졸음, 풍랑(風浪)에 어리울때
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들리고
행선(行船)배 북이 웁니다, 북이 웁니다.
이 시에서 미지의 대상은 '당신'으로 표기되어 있다. 개인의 미래일 수도 있고 조국의 앞날일 수도 있고 그 모두를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이 시가 쓰여진 해가 1922년이므로 당시 처해 있던 식민지 현실을 감안한다면 시인에게 예감되는 변화라는 것이 그리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창작 동기가 무엇이든 남겨진 작품이 시대 상황과 맞물려 해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앞날을 열어 나가야 하는 문인의 고민은 개인의 일일지라도 빼앗긴 나라의 현실에 맞닿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변화에 대한 갈망과 예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과정일 것이다.
변화가 어떤 형태로 올 것인지 몇 가지 모양으로 묘사된다. 포도빛 밤이 '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며 밀려 오듯이 천지를 조용히, 그러나 전체적으로 압도하며 올 수도 있고, '은회색(銀灰色) 거인이/ 바람 사나운 날, 덮쳐 오듯이' 요란스럽고 광포하게 올 수도 있고, '은고리 같은 새벽달/ 부끄럼성스런 낯가림을 벗듯이' 들뜨지 않고 잔잔하게 올 수도 있다.
기대와 염려가 섞인 변화의 양상이 펼쳐지다가 마지막 연에서는 다시 현실이 그려진다. '외로운 졸음, 풍랑(風浪)에 어리울 때/ 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들리'는 풍경이다. 포구를 떠나는 배에서 북소리가 울린다.
정지용이 「풍랑몽1」을 쓴 시점에서 100년이 조금 더 지났다. 안팎으로 가히 격변의 시대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미국의 일극 체계가 무너지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자주의 목소리가 거세다. 동유럽과 서아시아에서 타오르는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까지 위협한다.
전례 없는 변화의 시기에 이 나라에서는 마치 남의 땅처럼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민족의 앞날을 열어 나가야 할 대통령과 정부는 그 역할을 포기했다. 상식이 짓밟힌 나라에서 민중이 다시 성난 파도로 일어서고 있다. ‘외로운 졸음’으로 지친 우리 앞에 풍랑은 어리고, 궂은비 오듯 앞이 보이지 않는다.
격변의 풍랑은 일렁이고 출항하는 배의 북은 울리는데, 우리에게는 어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조용하지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올까, 광풍을 몰고 포연을 일으키며 덮쳐올까, 아니면 새벽달처럼 시나브로 다가올까?
불면의 밤, 나직이 되뇌어 본다.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