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빔국수를 시켜 놓고
끼니때마다 비빔국수를 먹을 수 있다면 행복이겠다 싶다가 나는 왜 이 비빔국수가 좋을까 자문하다가
비빔이라는 말에서
섞임에 백기 든 사람처럼 잠깐 헝클어지다가
갓 나온 비빔국수를 젓가락으로 뒤섞는다 설기 썬 상추와 채 썬 오이 위에 앙증맞게 얹힌 한 알의 메추리알까지
흰 면을 슬몃슬몃 내주고 무서움도 매서움도 아닌 달고 맵고 신맛이 어우러진 양념에 설핏설핏 물드는 면발
면면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아낌없어
송골송골 땀방울 꽤나 맺히게 하려는지 얼맵게 뒤섞여지면 젓가락 끝부터 혀에 갖다 대게 된다
살과 살을 비벼도 타들지 못하고 사람에게 맨 마음 비벼 봐도 비벼지지 않을 때가 많아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휘휘 감아 돌리는 동안
면들이 부러워 죽겠다
- 이돈형 시인의 시 '비빔국수' 전문
이돈형 시인의 시집 《나의 태몽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요》에 실려있다. 이 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비빔국수"라는 음식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에둘러 말한다.
화자는 "비빔이라는 말에서 / 섞임에 백기 든 사람처럼 헝클어"진다고 고백한다. "섞임"은 서로 통하는 것 같아 좋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성향과 욕망 등이 다르므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시의 "비빔국수"는 "흰 면을 슬몃슬몃 내주"면서 "무서움도 매서움도 아닌 달고 맵고 신맛"이 있는 세상에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낸다. 조건없이 내주며 스스로 물들어 간다. 아낌없이.
그러나 사람은 "맨 마음 비벼 봐도 비벼지지 않을 때가 많"다. 육체는 닿을 수 있어도 마음은 닿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저서 <너와 나 Ich und Du>에서 '진짜 "나"는 혼자 있을 때 생기지 않는다. "너"를 만날 때 비로소 태어난다'고 했다. 즉, 인간이란 관계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뜻이겠다.
어쩌면 행복한 삶이란 서로 비벼지지 않을 지라도, 마음이 닿지 않더라도 비비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싶다. "비빔국수"를 통해 관계의 실패를 말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최선의 "섞임"을 상상하게 하는 참 따스한 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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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가 되어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저도 따라 웃습니다. 나를 보며 웃는 사람이 많이 생기는 새해가 되고 싶네요.
향기로운 시와 고운 추천의 글에 웃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어향숙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