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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나비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6-01-03 23:01:19
  • 수정 2026-03-17 14: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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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긴 다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


아무도 보지 않는데 가끔은


양면을 펴서 평평하게 엎드렸다가


꽃빛에 반해서 얼굴을 대는 동안


바람은 날개를 붙잡고 꽃대는 휘청거려


어디선가 물방울도 듣고 있는


펴졌다 구부러지는 입의 모양


모았다가 벌어지는 어깨가 넓어진다


꽃가루가 묻으면서 공중에서 깊게 무늬들이 박히고


날개끼리 빠르게 부딪치면 앞으로 뒤로 숨막히게 반짝이고


앞으로 뒤로 떠 있는 동안 고요하게 부서지는 살갗의 비늘


양 날개 위에 마주 보는 몸의 문양은


마른 공기 속에 펄럭이는 두 장의 꽃잎


후드득


떨어질 것 같다가


구불거리며 솟구치다가


따사롭게 앉아 있다가


날아갈까


날아갈까


날아가는 나비


- 김밀아 시인의 시 '나비' 전문



올해 202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이다.


이 시는 꽃잎에 앉은 "나비"를 관찰하는 시선을 따라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 나비는 "꽃빛에 반해서" 망설이다가 "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굴을 대어본다. 그 과정들이 아주 감각적으로 그려져 내가 나비가 되어 바람, 꽃대 등 주변과 같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읽다 보면 점점 인식의 경계가 허물어져 감각의 주체가 나비인지, 꽃인지, 세계인지 구별이 안 된다. 아니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 떠오른다. 우리가 "나비"라는 시를 읽고 있는지, 나비가 우리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요하게 부서지는 살갗의 비늘"처럼 만물의 변화 속에 그저 한 순간 머물렀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의 "날아갈까 / 날아갈까 / 날아가는 나비"는 망설이면서도 안주하지 않고 날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이것이 우리가 삶을 겪어내는 방식이지 싶다. 새해 모두 훨훨 날아오르시길 바란다.



어향숙 시인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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