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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선의 희망공간] 마을에서 보는 선거 풍경은 '정치 바겐세일'···정당에 '매표' 아닌 '매질' 필요
  • 송형선 활동가
  • 등록 2025-06-02 05:56:03
  • 수정 2025-06-04 13: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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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말은 풀고 돈은 묶는 선거가 '좋은 선거'



지난 총선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을 분석해 본 자료를 보면 유권자들은 정당과 인물, 정책 순으로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지지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정보는 인터넷 SNS와 TV, 라디오, 신문 순으로 얻었다고 한다.


거리유세와 피케팅이 얼마나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 피켓을 들고 시끄럽게 해야 다른 경쟁자들에 묻히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터넷이나 SNS는 편향성이 심하다.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사람들의 논리가 더 강화되고 반대편이나 관심 두지 않은 쪽의 논리는 보이지 않는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곳이 또 SNS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선택이 아닌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선거 운동 방식은 엄청난 자원 소비와 에너지 낭비를 초래한다. 고성능 스피커와 영상 장치를 장착한 차량들이 정당별로, 지역구별로 누비고 다닌다. 정당마다 옷을 맞춰있고 피케팅 할 유급 선거운동원을 활용한다. 


놀랍게도 선거운동비 대부분 세금으로 충당된다. 이른바 선거공영제의 일환이다. 선거비를 먼저 쓰고 득표율에 따라 보전 받는다. 10%면 절반을, 15%면 전액을 받는다. 무한정 쓸 수는 없지만 15% 이상 득표가 보장된 유력 정당들은 막대한 선거비를 쓰고도 국민 세금으로 충당받는 것이다. 이번 21대 대선에서 법정 선거비용 한도는 520억 원이다. 막대한 돈이다. 


득표율이 10%를 넘지 못하는 군소정당은 어떨까? 가뜩이나 세도 약한데, 지원도 받지 못하니 선거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기탁금 3억 원을 내야하고 공보물 제작에도 수억 원이 든다. 한 마디로 선거에도 '부익부 빈익빈' 논리가 적용된다. 


군소 정당은 당원들의 쌈짓돈을 털어가며 선거를 치른다. 그래서 선거가 끝날 때마다 후보와 정당은 빚이 쌓여간다. 지난 10년간 '거대 양당'에 지급된 선거비가 1조 원이 훌쩍 넘었다. 그 외에도 주요 정당에는 선거 전에 선거 보조금을 200억 원 정도 지원한다. 한마디로 선거비를 전액 세금으로 치르면서도 수백억 원을 받는 구조다. 


선거를 치를수록 거대 정당은 돈을 벌고, 군소 정당을 빚을 지는 이상한 구조다. 선거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내기보다는 양당 중심 정치구조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시끄러운 선거운동에 들어가는 돈이 우리의 세금임을 알아야 한다.


과거 선거에서는 학교 운동장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원 같은 곳에서 연합 유세를 벌였다. 후보들은 대중 앞에 자신의 정견과 공약을 발표했다. 대중은(물론 지지자들도 있겠지만) 후보의 목소리를 듣고 비교하면서 선택할 수 있었다. 주요 정당은 물론 군소 정당, 무소속 후보라도 동일한 기회를 얻어 자신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요즘엔 그렇게 대중을 모아 유세하는 것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권자들에게는 동등하게 후보를 만날 기회를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배포용 선거공보물도 문제다. 후보별로 비용을 부담하니 돈 많은 정당은 총천연색 자료집이 나오고 가난한 정당은 A4 한 장에 법정 선거공보 사항과 약력을 몰아 넣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알권리가 선거제도의 허점으로 침해되고 있다. 공보물만이라도 모든 후보자의 정보를 엮어 발행해야 한다. 돈 있는 후보든 없는 후보든 상관없이 국민이 최소한의 정보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선거 기간, 공정한 선거를 위한 정책설명회, 토론회 등 제한도 문제다. 정당 간 토론회 등의 집회 경쟁이 과열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데, 유권자들이 정책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각 정당의 정책에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하기 위해서는 정책 설명회나 토론회는 많을수록 좋다. 


좋은 선거는 '말은 풀고 돈은 묶는 선거'여야 한다. 유세차량을 돌릴 돈도 부족하고 유급 선거운동원을 쓸 여력도 안 되는 후보들은 정책설명회라도 있어야 자신과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는데 지금의 선거법은 모두 다 금지하고 있다. 


오히려 거대 정당에 유리한 선거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유권자들은 선거라는 공간에서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고민하고 함께 논의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당선과 낙선만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선거를 통해 확인하고 합의점을 찾을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


당선된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낙선한 후보라도 그 후보가 제기하는 문제나 정책이 타당하다면 정책에 반영될 여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얼마나 많이 개입하고 공론을 했는지가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다는 아니지만)공약은 공약이고 통치는 다르다고 겁박할 수도 있는 것은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가 공약과 정책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행 선거법은 1987년 개헌 이후 꾸준히 변화해 왔다. 거대 양당체제를 견제하고, 군소 정당들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려는 제도들이 도입됐다. 선거공영제를 통해 국민의 참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방편들도 늘었다. 


그러나 취지와는 다르게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로 유권자들의 알권리는 제약 받고 있다. 거대 양당은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보장받는 데 비해 군소 정당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바꿔야 할 정치구조가 많다. 그중에 선거제도도 포함돼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마을에서 선거 풍경을 보면 '시민을 정치 주체가 아닌 정치 소비자'로 만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른바 '정치 바겐세일' 같다. 


선거 공간이 특정 정당과 정치인의 성공과 실패의 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꿈꾸고 설계하며 상상이 넘치는 공간이 돼야 한다. 매표를 원하는 정당에 대해 '정치의 소비자'가 아닌 정당에 매질할 수 있는 '정치의 소유자'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이 필 공간을 꿈꾸어 본다.

덧붙이는 글

마을기획 청년활동가 송형선은 사단법인 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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