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이 말해주지 않는 고통이 있다
나무가 다 보여주지 않는 나무가 있듯이
내게도 당신에게 말할 수 없는 당신이 있다
상처가 다 말하지 않는 상처가
그래서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꽃이 다 보여주지 않는 꽃 어딘가에
꽃의 꽃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다 보여주지 못하는 내가 있듯이
당신이 내게 다 말하지 못하는 당신이 있듯이
이별에게도 이별하지 못하는 이별이 분명 있겠다
만남에게도 만나지 못하는 만남이 분명 있겠다
-이문재 시인의 시 '고통이 말해주지 않는 고통' 전문
이 시는 이문재 시인의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에 실려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거나 말하지 않아도 내게는 당신이, 당신의 마음 속에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와 꽃이 땅속의 뿌리, 수액의 흐름, 지난 계절의 기억 등을 다 보여주지 않아도 어딘가에 나무다움과 꽃다움이 있는 것처럼.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가끔은 그 고통도, 견딜 수 없었던 상처도 해석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살다 보면 침묵 속에서 스스로 아물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in)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과 넘쳐나는 정보가 아닐 지도 모른다. 겸허히 침묵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어쩌면 침묵이 가장 깊은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는 새로운 '치유'의 방식을 제시한다. '침묵'이라는 부재를 통해 오히려 더 분명한 존재를 깨닫게 한다. '부재의 시학'이라 말할 수 있겠다. 말하지 않고 보여주지 않아도 "고통"을, "당신"을, "상처"를, "이별"을, "만남"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