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때로는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잘못을 깨닫기도 하고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행동의 방향을 돌이키기도 한다. 공동체에서는 더 많은 벽을 의식해야 한다.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있고 내가 속한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크면 클수록, 책임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벽을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저 맹목의 신념은
미련하다. 아니
무섭다.
돌격!
독재자가 던진 말 한마디에
만세! 달려가서 살육도 불사하는
몽매.
그러므로 태초에
인간은 벽을 쌓았다.
막다른 벽은 한번쯤 뒤를
돌아보게 함으로
항상 앞만 보고 기어가는
눈 없는 벌레에겐
벽이 없다.
과거를 비쳐주는 거울이
없다.
(오세영, 「벽」)
이 시는 1990년에 발행된 시집 『사랑의 저쪽』에 수록되어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맹목의 신념'이 '미련'함을 넘어 '무섭다'고 했다. '독재자가 던진 말 한마디에' '달려가서 살육도 불사하는/ 몽매'를 우리는 일찍이 경험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한번쯤 뒤를/ 돌아보게' 하는 '막다른 벽'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헌법으로 다스려지는 우리 정치 역사에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체포되어 구속되기까지 윤석열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라를 탓하며 자신이 마치 희생자인 것처럼 말한다.
체포되기 직전에 촬영하여 배포한 영상에서 윤석열은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면서 "국민들을 기만하는 이런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저는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우리 국민 여러분들께서 앞으로 이러한 형사 사건을 겪게 될 때 이런 일이 정말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세상은 틀렸고 오직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오만함이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중증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흔히 말하는 극우 유튜브의 주장 그대로다. 객관적인 사실은 관심 밖이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 같다.
그에게는 벽이 없었던 것이다. 부딪혀 멈추어 보고, 생각과 행동을 바꿀 만한 벽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는 충언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생각에 반하는 말을 하면 화를 내면서 내쳤다고 한다. 결국 그의 생각에 맞는 소위 '충암파' 사람들로 군부와 행정부 요직을 채우고 나서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마침내 구치소에 수감됨으로써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항상 앞만 보고 기어가는/ 눈 없는 벌레'처럼 '과거를 비쳐주는 거울'을 보지 못한 후과다. 일찍이 벽을 만나고 그 벽을 벽으로 인식했다면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윤석열과 그 하수인들 몇몇을 빼고 내란에 동원된 군인들은 명령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이행했고, 내란을 막고자 나섰던 시민들과 정치인들은 목숨을 걸고 안간힘으로 맞섰다. 역사 속에서 만났던 벽을 기억하고 그 교훈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를 비쳐주는 거울'을 확실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만 보고 기어가는' '눈 없는 벌레'가 아니고 수시로 벽에 부딪히고 스스로 돌아보며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 가는 존재, 바로 사람이다.
지창영 시인은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시집으로 『송전탑』이 있고 번역서로 『명상으로 얻는 깨달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