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진 교수, 엄재민 박사과정생, 유성렬 박사과정생
서울대 기계공학부 조규진 교수(인간중심 소프트 로봇기술 연구센터장) 연구팀이 효율적인 픽 앤 플레이스(pick-and-place) 작업을 위해 사람처럼 여러 물체를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로봇 그리퍼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물체를 동시에 옮길 뿐 아니라 원하는 위치에 정렬할 수 있는 기능까지 구현해 비정형 환경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사람의 손동작 원리를 분석해 로봇 그리퍼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례다.
이번 연구 성과는 12월 12일 로봇 분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에 게재됐다.
연구의 출발점은 '다물체 파지(multi-object grasping)'로 불리는 사람의 파지 방법이었다. 연구팀은 2019년 작업자들이 물체를 하나씩 옮기지 않고 동시에 여러 개를 옮기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조규진 교수는 "기존 그리퍼 연구들은 대부분 로봇이 '한 번에 하나의 물체를 옮긴다'는 가정 하에 발전해 왔다"며 "한 번에 여러 물체를 옮기는 다물체 파지 그리퍼도 개발되긴 했는데 여러 개의 작은 그리퍼들을 로봇팔 끝단에 배치한 형태라 정형화된 환경에서만 사용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사람의 다물체 파지 전략을 분석, 연구해 비정형 환경에서도 그리퍼 활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세계 최초다.
핵심 동작은 '손가락-손바닥 이동 동작(finger-to-palm translation)'과 '손바닥-손가락 이동 동작(palm-to-finger translation)'이다.
책상 위 물체들을 손가락으로 짚어 손바닥에 올린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해 원하는 곳에 하나씩 다시 재배치하는 사람의 동작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그리퍼의 손가락에 디커플링 링크(decoupling link)를 설치해 물체를 파지하고 손바닥으로 전달하는 동작을 기구학적으로 분리해 제어를 간단히 했다.
그리퍼의 손바닥은 유연한 털이 배열된 벨트형 구조로, 물체를 안정적으로 저장하며 다양한 크기의 물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3개의 모터만으로 모든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독특한 하드웨어 설계로 연구진은 사람의 복잡한 움직임을 로봇에 맞게 간단하게 만들었다.
검증도 했다. 물류 환경에서 그리퍼가 선반 위 8개의 물체를 2번의 왕복 운동으로 옮겼다. 단일 물체 파지 방식보다 공정 시간 34% 절감, 로봇팔 이동 거리 71%를 단축했다. 가정 환경에서는 책상 위 물체들을 모두 저장한 뒤, 원하는 위치에 하나씩 놓았다.
물류, 가정 환경뿐 아니라 대표적인 비정형 환경으로 꼽히는 빈-피킹(bin picking, 여러 물건이 컨테이너, 수납함 등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공정) 공정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책임자 조규진 교수는 "자연의 원리는 로봇 동작 설계에 영감을 준다"며 "동작의 모방뿐 아니라 핵심 원리를 로봇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로봇공학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다품종 소량생산, 빈 피킹, 물류 공정 등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공정들에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1저자인 엄재민 연구원(박사과정)은 오는 2월 졸업 후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 다물체 파지 그리퍼의 경로 계획(path planning)과 벨트형 손바닥의 디자인 최적화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