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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인터뷰] '위로의 문학'을 실천하는 오시은 동화작가
  • 정해든 기자
  • 등록 2025-04-03 00:00:01
  • 수정 2025-04-03 06: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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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월에 만난 제주 4·3 그림책 《곤을동이 있어요》

오시은 작가


안녕하세요? 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에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꽃은 피고 있는데, 기다리던 봄이 아직이어서 마음이 편치 않네요. 시국이 불안정하니 많은 분의 마음이 여전히 겨울이 아닐까 싶어요. 기꺼운 마음으로 봄을 반기는 날이 어서 오면 좋겠어요. 

   

네 그렇긴합니다. 4월에 권하고 싶은 오시은 작가의 동화 한 편 소개해 주십시오. 


4월은 예쁘면서도 가슴 아픈 달이에요. 제주 4.3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달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곤을동이 있어요》를 소개하고 싶어요. 


잊지 말아야 할 4월의 추천 작품이어서 의미가 큽니다. 줄거리를 들려주십시오. 


76년 전 벌어진 제주4.3 당시 군경에 의해 불타 사라진 제주 화북리 마을 곤을동을 담은 그림책이에요. 곤을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던 예쁜 마을이었는데, 토벌대를 습격한 무장대가 숨어들었다는 소문만으로 마을사람들이 죽고 집들이 불타버렸어요. 지금 곤을동에는 집터와 밭담만 남아 있어요. 4.3이 있기 전, 곤을동이 사람들의 소중한 터전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와 이웃의 평범한 일상과 터전을 한순간에 깨뜨리는 폭력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었고요. 


위 작품 때문인가요? 요즘, 제주도에 자주 가시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지난해 4월 《곤을동이 있어요》를 출간하고부터 자주 가게 되었어요. 물론, 책이 나오기 전에는 글을 쓰기 위해 자주 머물렀고, 책이 나온 후에도 제주 4.3 투어와 강의 요청 등으로 머물렀어요. 용건이 없이도 가곤 해요. 가면 곤을동을 먼저 들러요. 고향 친척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처럼, 저 혼자 "왔어요" 해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예요. 그렇게 빈 집터와 밭담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그냥, 좋아요.


출간 뒤 자주 찾는 인연보다 앞선 인연이 엿보입니다. 《곤을동이 있어요》를 쓰게 된 사연이 있을까요? 


예전에 작가회의에서 진행하는 제주 4.3 다크투어에 동행한 적이 있어요. 마지막 일정으로 곤을동을 갔어요. 그곳을 본 순간 알았어요. '나는 이 마을의 이야기를 쓰겠구나' 하고요. 마을 앞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와 마을을 감싸는 금빛 햇살이 제게 마법을 걸었는지도 몰라요. 일행들은 집터와 밭담이 을씨년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했어요. 저는 집터와 밭담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이는 듯했고, 사람들의 정겨운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마을이 예쁘게 보였고, 따스한 기운도 가득했어요. 그래서 마을이 사라지게 된 그 사건이 더 아프게 느껴졌고요.    


오시은 지음 / 전명진 그림 / 바람의아이들 / 19,800원


역시, 동화작가의 시선은 남다르군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동시나 시 한 편 청해볼까요? 


아마도 따듯한 시를 청하신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시가 잘 떠오르지 않아요. 좋아하는 동시인은 정세기 시인이에요. 하지만 오늘은 정양 시인의 시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진짜 좋아하는 시인이거든요.



끝물 


동지섣달 레임덕 앞에 

산천초목 얼부풀어도 

우리가 남이가 싶은 小寒네 집에 가서 

주거니 받거니 터놓고 살다가 

괴춤에 감춘 추위까지 꼼수까지 

다 꾸어주고는 마침내 

굶어 죽게 생긴 大寒이가 

빼도 박도 못하게 얽힌 일들을 

줄줄이 들먹거리며 

立春네 문 앞에 와서 

우려먹다 남은 추위를 동냥질하네 

 


지난해에 4·16 세월호 사건을 다룬 글도 발표하셨죠? 


지난해가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였어요. 그래서 <작가들> 봄호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원고를 청탁받았어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그날로부터 현재까지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의 행보를 정리하는 원고였어요. 그 원고가 '기억의 걸음들로 함께 새긴 4·16 세월호 참사' 였어요.  


내용을 조금 더 들어볼까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어린이청소년문학에 몸담은 사람들은 똘똘 뭉쳤어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자 등 모두가 한마음이었죠.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요. 그걸 위해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어요. 광장에 나가 서명 운동을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노란 엽서를 그리고, 걸개 그림책을 만들고, 도서를 출간하고, 전국을 돌며 북콘서트를 열고, 팽목항 방파제를 추모 타일로 가득 채워 기억의 벽을 만들었어요. “기억의 걸음들로 함께 새긴 4·16 세월호 참사-‘세월호 기억의 벽을 지키는 어린이 문학인들’의 10년”은 그 과정을 기록한 글이에요.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을 연대하면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글인 거죠.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 』 발간 위원으로도 활동하셨죠?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416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교직원의 삶을 기리기 위한 약전(짧은 전기)이에요. 사고가 있기 전까지 희생자들의 삶을 그린 거죠. 단원고뿐 아니라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희생된 세 청년의 이야기도 담겼어요. 240명이 넘는 희생자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시인, 동시인, 동화작가, 소설가, 르포작가, 극작가 등 139명의 작가가 참여했어요. 이들이 바로 약전 작가단이죠. 작가들은 유가족을 만나 수차례 인터뷰를 하고, 희생자들의 발자취를 좇아 돌아다녔어요. 그러는 동안 작가들이 치른 가슴앓이는 말로 다 못하죠. 작가들 마음은 유가족 같았어요. 글을 쓰는 동안 참 많이들 아파했죠.   


416 단원고 약전 작가단 지음 / 경기도 교육청 엮음 / 굿플러스북 / 156,000원


쉬어가는 의미로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동화작가'가 된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요? 


동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위로의 문학이라 하고 싶어요. 동화를 쓰게 된 계기도 그거였어요. 동화를 읽고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나도 이런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게 된 거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가끔 성인을 대상으로 강연 요청을 받아요. 그럴 때마다 꼭 하는 얘기가 있어요. "삶이 나를 밀어낸다고 느낄 때,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외롭고 지칠 때, 동화를 읽으시라"고 해요. 그러면 위로를 얻을 거라고요.    


어른들과의 만남 만큼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많던데요. 아이들과 만날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쓰시나요?  


어린 독자들과 만나면 책을 중심으로 얘기도 나누고 활동도 해요. 성인 독자들은 그냥 얘기만 나눠도 되는데 어린 독자들에게 그러면 지루해 해요. 그러니 만들기도 하고, 풍선도 터뜨리고, 춤도 춰요. 목소리 톤도 높여야 해요. 체면 차린다고 목소리 깔면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많이 들어줘야 해요. '내가 작가니까 내가 많이 얘기할게' 하면 안 돼요.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래서 최대한 즐겁게 지내게 하려고 노력하고,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살피죠.     


혹시, 5월에 진행 예정인 프로그램이 있나요?

 

한국근대문학관 지원으로 진행되는 책방 잡담회에 참여해요. 작은 서점 <책방산책>에서 진행하는데, 예전에 출간한  『안녕, 나의 우주』로 청소년들을 만날 예정이에요. 


인터뷰 내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발간한 책 중에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을까요?


재작년에 출간한 저학년 동화집 《천삼이의 환생 작전》이 있어요. 다시 태어나기 위해 천년 넘게 잠들어 있던 꼬마 영혼 천삼이에 대한 이야기예요. 천삼이는 여자 아이가 되어야 했는데, 삼신의 실수로 남자 아이가 돼요.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천삼이가 옥황상제를 비롯한 여러 신들과 옥신각신 하는 이야기가 담겼어요.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건, 우리 사회의 남.녀 갈라치기가 심각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주인공 천삼이는 여자는 이래야 돼, 남자는 이래야 돼 라는 편견에 당당히 맞서요. 저는 이야기를 쓸 때 천삼이한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심정으로 썼어요.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뭐든 다 하라고요. 그런 천삼이가 독자들의 마음도 시원하게 해 주면 좋겠어요.  


발간 이력을 보면, 다작이던데요. 발간을 기다리는 작품이 있을까요.  


4월 2일에 저학년 동화집이 발간돼요. 제목은 《개천에서 복룡이 날다》예요. 뭘 해도 잘 안 되는 복룡이가 스스로 당당해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예요. 어린 독자들이 특히 좋아해 주면 좋겠어요.  




기대됩니다. 새롭게 펼칠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올해는 장편을 위한 자료 조사에 시간을 쏟을 계획이에요. 그러는 동안 청탁받은 단편 원고 서너 편을 써야 하고요. 이제는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안 세워요. 그래봤자 제대로 되지 않으니 속만 상하거든요. 내가 나를 볶는 일은 하지 말자 싶은 거죠. 그저 때마다 주어지는 일을 잘 해내는 게 행복인 거 같더라고요.  


혹, 빠진 답변과 함께 독자들께 인사말 부탁합니다. 


외롭다고 느껴지는 날엔 동화를 읽으세요. 더불어, 언제나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오시은 동화작가는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청소년소설분과장, 월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주간,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 발간위원을 했고 현재 인천작가회의의 아동청소년분과장과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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