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환 영화감독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고맙습니다.
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전 질문입니다. 요즘 읽는 책 한 권 소개해 주십시오.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운동 영웅 《김명시》(이춘 지음, 산지니)를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지식이 부족한 항일독립운동사를 틈틈이 읽고 있는 셈입니다.
작가정신이 몸에 밴 '영화감독 구자환'이 바라본 영화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사실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한 감정의 전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소설이나 기사 등은 지식이나 정보 전달에 효과적입니다. 때로는 그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관객에게 더 섬세한 감정을 전달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매체가 영화입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죠? 안내 부탁합니다.
<장흥1950:마을로 간 전쟁>은 전작인 <레드 툼>, <해원>, <태안>에 이은 민간인학살 다큐 영화 시리즈 마지막 편입니다. <레드툼>은 경남지역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을 소재로 참혹한 민간인학살 사건을 알리기 위해 학살 현장과 당시 유족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았습니다.
<해원>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기 7~8년 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의 원인과 배경, 가해자 등을 지목하며 민간인학살의 역사를 주제로 했습니다. 그리고 <태안>은 충남 태안군의 민간인학살 사건을 소재로 대한민국 전역이 학살지임을 알리고 화해라는 의제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었습니다.
이번 마지막 작품인 <장흥1950:마을로 간 전쟁>은 장흥군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 사건을 소개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학살했고, 지켜야 할 국민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장흥1950:마을로 간 전쟁>
오랜 시간 매달려 민간인학살 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나이 서른 중반까지 민간인학살 사건을 몰랐습니다. 2004년 당시 기자 시절, 경남 마산시 여양리에서 나온 유해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가로부터 끔찍하고 광범위한 학살이 자행되었는데, 나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는데, 알고 보니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행인 10명에게 물으면 10명 모두 모를 정도였습니다. 현장에서 만나고 가까이 지냈던 유족 할머니는 “우리는 일생 이 억울함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영화로 만들어 전 국민에게 우리 억울함을 알려달라”는 부탁도 있었습니다.
속고 살았다는 분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인학살 사건을 폭로하고, 알리기 위해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제작비도 제대로 없이 만들다 보니 모든 과정을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배급망도 없는 상태여서 매번 흥행에 실패하고 있지만, 내가 만든 영화가 국가기록원 역사기록물로 보존되고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민간인학살 사건을 알게 되어 위안으로 삼습니다.
답변 고맙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우선 적은 제작비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작비 없이 만들기도 합니다. <레드 툼>의 경우 제작비 없이 10년 동안 틈틈이 촬영하여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극영화는 대개 인물 중심의 서사로 갑니다. 주인공의 갈등을 보여주고 해결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인물의 감정과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다큐의 경우 사건 중심의 서사로도 제작이 가능합니다. 극영화에 비해 감동이 없고 지루할 수 있지만, 광범위한 사건을 소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극영화에 비해 다큐는 가공하지 않은 사실을 영화적 생명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큰 매력이 있습니다.
2016년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신인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수상받은 영화 제목과 들꽃영화상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영화 <레드 툼>으로 들꽃영화상 신인상을 받았고요. '들꽃영화상'은 우리나라 예술,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수상하는데, 독일 출신 한 분이 독립영화인들을 위로하고 힘을 보태기 위해 주도하여 들꽃영화상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국내 유력 영화제가 관심 두지 않은 작은 영화에 외국 '예술기획자'가 눈여겨보고 공로를 인정해 상을 수여하는 셈입니다.
그 당시 저도 '들꽃영화상'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작품이 몇 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고 연락이 왔는데, 스팸으로 알고 무시했습니다. 이후 다시 연락이 왔을 때 찾아보니 그런 영화상이 있었습니다.
<레드툼>이 개봉되었을 때 수많은 언론과 방송, 잡지에서 인터뷰가 들어왔습니다. 다들 알지 못한 사건이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화판은 달랐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 말고는 국내에서 진행하는 모든 국제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연락을 받았으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은 전화가 오더군요. 당시 지방에 살고 있어서 서울까지 힘들게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최 측에서 가능하면 와 달라고 해서 영화상이란 것도 처음이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경이나 하자고 올라와 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레드 툼>으로 3회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신인감독상 받는 구자환 감독.
2013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도 받았습니다. 부연해 주십시오.
200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의 시상은 나를 구원한 셈이 되었습니다. <레드 툼>은 제작비 없이 10년을 촬영했습니다. 당시 돈이 없어 말 그대로 굶으며 다녔습니다. 그렇게 만든 영화인데 사회적으로는 무시 당하고 냉대 당했습니다. 모 지자제는 지원 심사 대상에서 빼버리기도 하고, 진보개혁 진영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영화인은 '그게 무슨 영화냐'며 비아냥거렸습니다. 모 독립영화배급사는 이 영화 개봉을 못 하겠다고 하고, 모 국제영화제에서는 밤새 논란 끝에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배고프고 외로웠고, 분노만 커졌습니다. 유족들의 억울함과 국가가 묻어버린 '떼죽음'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생각으로 서울독립영화제 경쟁 부문에 보냈는데, 생각지도 않게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감독 이력만 보면 상업영화와 일정한 거리가 느껴집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민간인학살 관련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출발점은 ‘폭로’와 ‘고발’입니다. 그로써 당시 반백 년 이상 땅속에 묻혀 있는 억울한 영혼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려 했고, 국가범죄를 전 국민에게 알리려 한 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의 목적에만 매달렸습니다. 상업성이나 흥행을 위한 제작이었다면 만들지도 못했을 겁니다. 막대한 제작비를 민간인학살이라는 이념 논란에 빠질 수도 있는 영화에, 대중이 관심 없는 소재에 돈을 댈 투자사는 없을 겁니다.
제가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기자생활을 하면서 현장에서 카메라를 익히며 독학했습니다. 그래서 예술적이나 영화적 표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대중성을 위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화하거나 감추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참혹한 민간인학살을 날 것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알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백만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표현하기도 싫었습니다. 그저 알리고 폭로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적 관점보다 오히려 기자의 입장으로 더 접근한 것 같습니다.
노력의 결과일까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역사기록물 수집으로 영구 보관된 작품이 있더군요.
2021년 그때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인데 <레드툼>, <해원>, <태안>이 국가기록물로 임시 선정되었다"며 영화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묻더군요. 그 당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가 훼손, 분실되면 어떡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보관하겠다니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 국가기록원에서 자체 일정을 마치고 영화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장편 다큐멘터리 <회색도시>를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했습니다. 영화 줄거리가 궁금합니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본 사람은 100명이 되지 않습니다. 개봉조차 하지 못했고, 영화에 출연한 노동자들도 "끔찍해서 보기 싫다" 할 정도의 폭력진압이 발생한 노동자 파업이 소재입니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 때인데, 포항 '포스코건설노조'가 포항 포스코 건물을 점거하게 됩니다. 그 이후 규탄 집회에 참여한 하중근 씨가 경찰의 과잉 진압에 사망하게 되는데, 그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언론과 방송은 그의 사망 과정을 경찰 발표 그대로 기사로 내보내는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중근 노동자는 규탄 집회를 폭력적으로 침탈한 경찰의 두 번째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모 방송은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로 진출하다가 경찰과 충돌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현실이 왜곡되어 알려진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취재하며 촬영한 영상을 모아 다큐로 제작한 것입니다.
형산강로터리에서 12시간 동안 대치 끝에 야간에 진압 당했는데 이른바 '피바다'라 할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300여 명이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속에서 촬영하던 저도 경찰 방패에 맞아 쓰러지기도 했는데 역시 대중성 없는 영화다 보니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회색도시>
듣고만 있어도 장면이 생생합니다. 혹, 성장기 중 영화감독이 된 계기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영화 영상과는 전혀 관련 없는 성장기였고, 대학도 경영학과 출신입니다. 대학 졸업 후 생계 유지가 어려워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회운동을 그만두려 했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가장으로서의 책무도 해야 했고요. 그런데, IMF구제금융이 시작되면서 모든 일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학생운동으로 구속된 전례가 있어 취직은 했으나 모 기업은 발령을 내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보험영업을 했는데, 국가적 경제위기가 닥친 것이죠. 배운 기술도 없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에 들렀는데, 마침 총파업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모 인사가 “총파업 하는데 방송사 카메라가 하나도 안 온다”며 투덜댔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진해에서 다른 행사가 있는데 거기로 다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내가 카메라를 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카메라를 겨우 배웠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거래처를 만들어야 했기에 동분서주 영업해 드디어 촬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원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노동자 배달호 씨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당장은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는데, 그 현장으로 가면 경제적으로 폭삭 망할 것이 뻔했습니다. 고민하다 결국은 내가 카메라를 들려고 했던 목적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바꾸어 보면 가정을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 기자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발전하여 투쟁 현장이나 역사적 현장을 영상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연함이 느껴집니다. 문득, 다큐멘터리 영화 예찬론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본성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자본의 힘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대중성과 흥행성에 일정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온전한 감독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엄청난 경제적 고통과 심적 부담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힘겨운 시기를 지나 보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영화를 남길 수 있습니다. 대개의 상업영화는 한순간 흥행을 하고 경제적 보상을 얻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는 세대를 아울러 두고두고 기억하고 찾는 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경제적 보상인지, 가치의 창출인지에 관한 선택은 감독 본인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치의 창출을 선택하면 그만한 고통을 반드시 감내해야 합니다.
상영 중인 영화 뒤 이어질 계획은 무엇입니까?
<장흥1950:마을로 간 전쟁>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시리즈 마지막 작품입니다. 오랜 세월 탓에 오염된 진술도 많아 기록형 다큐 제작이 힘들어졌습니다. 행여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내용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는 제작할 경제적 여력도 없는 실정입니다. 영화 한 편 만들 때마다 수천만 원의 빚이 생기니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두렵습니다. 늦었지만, 노후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제는 20년 세월 동안 찾아다닌 민간인학살 사건의 기록을 멈추어야 합니다. 당장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지만, 제작비 없이 진행할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고, 당분간은 경제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 안정되고 여건이 되면 지난해 서술한 <빨갱이 무덤>에 이어 전국의 민간인학살 사건을 다룬 <해원>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려 합니다.
숙연해집니다. 다음에 꼭 뵙기를 앙망하며 헤어짐에 대한 인사 부탁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나라 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로 점철됩니다. 그중 하나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사건입니다. 이 부분만 들여다보아도 대한민국 질곡의 역사를 알게 됩니다. 당장 오늘의 호화로움과 개인적 이익에 머물러 역사를 망각하면 오늘의 '12·3비상계엄' 하에서 벌어질 뻔한 '민간인학살'이 다시 반복될 수 있습니다.
당시 민간인학살 사건 가해자들을 적법한 절차대로 처벌했다면 '광주5·18학살'이나, '4·16세월호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늘의 계엄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시민 개개인 가슴에 생명 존중과 인권 의식이 깊이 박혀있다면,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함부로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국가가 자국민을 학살하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역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로서만 아는 듯 얘기했지만, 지나 보니 이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부디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해방정국 3년을 포함한 '한국전쟁기'까지의 현대사를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구자환 영화감독은 2016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신인감독상, 2013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2013년 장편 다큐멘터리 <레드툼> 서울 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2007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한 장편 다큐멘터리 <회색도시>,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 장편 다큐멘터리 <해원>, 2022년 장편 다큐멘터리 <태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