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캡처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12월 3일 밤 10시 27분 계엄이 선포됐다. 장갑차가 도심을 활보했고 헬기가 국회에 착륙했다. 계엄군의 총칼이 서울을 겨누었다. 1980년 전두환의 망령이 전국을 삽시간에 휘감았다.
윤석열은 국회와 국회의원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았고,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을 입에 담았다. 윤석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거에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이 됐다.
23분 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포고령이 발표됐다.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
MBC 캡처
되살아난 1980년의 망령, 계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은 무효”라며 “신속하게 국회로 와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사람들이 속속 국회로 모여들었다. 계엄군이 국회의원의 등원마저 막아서자 의원들은 담을 넘으면서까지 국회에 입성했다.
4일 새벽 1시 1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 가결 하며 긴박했던 2시간 40분이 끝났고 4시 27분 계엄이 해제됐다. 6시간 만이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는 여전히 차량이 많았고, 출근길도 그대로였다. 점심엔 사람들이 건물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저녁이 되자 뿔뿔이 혹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다른 것이라면 “윤석열 미친 거 아냐”가 사람 사이를 메웠고, “그래도 다행이야”가 서로를 위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석열의 ‘계엄 선포’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영국 BBC는 “자신의 절박한 정치적 문제 때문”으로, 미국 CNN은 “계엄령 선포, 기괴하다”고 전했다.
윤석열은 미치지 않았다···‘반국가세력’, ‘자유’ 남발은 전쟁 선동
맞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계엄을 선포할 리 없다. 그런데 윤석열은 미치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 전부터 뉴라이트를 감싸고 돌며 부일매국에 반대하면, 윤석열에 반대하면 반국가세력으로 몰았다. 을지훈련, 국군의 날 같은 큰 국가 행사의 담화에서 ‘반국가세력’은 거의 빠지지 않았다. 전투기가 광화문 상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어느샌가 뉴라이트에 동조하는 국민에게 “반국가세력과 항전하라, 국가 총력전 태세가 필요하다” 같은 말을 했다. 실질적인 내란 선동이며 전쟁의 표명이었다. 민주, 진보, 인권을 거론하면 다 반국가세력이었다. 올 8월 ‘계엄령 검토’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선포됐다.
설마가 현실이 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가 아는’ 윤석열은 아집이 세다. 게다가 유치하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전세사기특별법 등 민생 관련 법안도 모자라 아내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까지 야당이 발의한 법안에 지금까지 21번의 거부권을 행사할 정도다. 계엄까지 왔으니 그에게 반성이나 하야를 바라는 건 무리다. 내일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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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함, 두려움 그리고 용기···언제라도 선포될 수 있는 계엄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는 두려움을 얻었다. 우리는 반공주의, 국가주의를 표방하며 민중을 죽이고 각종 부정을 저지른 대통령들의 독재시절을 3번이나 살아내는 동안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투쟁했고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런데 45년 만에 느닷없이 계엄을 겪게 됐다. 피로 일군 민주주의가 무색하게 ‘언제라도 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자본주의도 두려움에 직면했다. 계엄 당일 환율은 한때 1,440원까지 치솟았고 뉴욕증시에서 우리 기업들 주가는 날개 잃은듯 떨어졌다. 가상자산도 30% 넘게 폭락했다. 더 큰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들 심리다. 하루 새 4,224억을 팔아치웠는데도 매도세가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트럼프 포비아’에 ‘코리아 엑소더스’가 심해지는 국내 증시에 기름을 부었다. 국가가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계엄까지 선포됐으니 투자할 마음이 생길까? 주한미국대사관은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이런 나라에 여행 오고 싶을까?
MBC 캡처
이순신 장군 “상유십이”···안귀령, “부끄럽지 않냐” 호통
다행이라면 우리는 꾸준히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왔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나타날 것이다.”(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대사) “오히려(尙) 배가 12척이나 있다(有十二)”며 임진왜란 3대 대첩을 만들어냈다.
총구가 가슴을 겨누고 있는데도 “부끄럽지 않냐” 호통치는 정치인 안귀령을 보며 눈물이 났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국회로 뛰쳐나간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계엄의 파장은 오래갈 것이다. 조만간 ‘내란 목적의 친위쿠데타’로 불릴 수도 있지만 윤석열이 얼마나 오래 ‘대통령자리’를 지키는 지가 파장의 시간을 좌우할 것이며, 얼마나 유치한 지가 파장의 공간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낼 것이다. 한강 작가가《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제주4·3을, 《소년이 온다》에선 5·18항쟁을 풀어내며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했다.” 이 사태가, 그리고 윤석열 가족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염치없는 행태들이 우리 문화콘텐츠의 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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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이런일이 벌어지고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