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
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땅에서 났으면서도
먼 하늘만 보고 자라
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
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
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안수현 시인의 시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전문
이 시는 202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이다.
심사평 중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과 외롭지만 끝끝내 살아내는 질긴 생명의 온기가 마음을 움직였다"는 부분에 공감이 많이 갔다. '양자물리학' 이론에선 우주 만물은 에너지의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같은 주파수끼리 서로 공명한다고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생각'과 '마음'도 파동이면서 입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 입자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기운이 작용하여 무언가 변화 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엄마는 윗집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떨어지는 물이 신경쓰이지만 "많이 더운가보다" 하며 토마토 화분을 적시는 생명의 물로 이용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으로 변화시켜 판단의 보편성을 뒤짚는다. 이런 엄마를 보고 자란 화자도 외롭지만 그 오래된 기억과 관계를 간직한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는 토마토처럼 어디에서든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위 시가 평범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토마토'를 매개체로 썼지만 행간과 행간을 넘을 때마다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마음의 파동이 크다.
토마토 한 그루를 심듯 새해에는 시처럼 주변에...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