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전화기가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 떠난 지 일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원을 켜면 문자메시지가 와 있고 부재중 전화도 제법 있다 어쩌다 진동이 울리면 받을까 말까 망설여진다 전화기가 죽으면 엄마가 또 죽을까 싶어 충전을 계속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죽은 엄마 전화기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살아 있는 나 때문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에도 너무 힘들어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나도 거기로 가고 싶은데 엄마 나 가도 되나 답 문자 기다리는 대신 엄마 전화기 속으로 이니셜과 별명이 많은 엄마의 사생활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수백번 넘게 열어본 우리 엄마 그래서 그렇게 비상금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빠와 매번 심하게 다퉜고 그래서 그래서 요양원에 있는 엄마의 엄마한테 달려갔고 그래서 그날 새벽 차를 몰고 동쪽 바다로 향했고 그래서 엄마가 그래서 엄마는 그래서 나도 그날 이후 눈을 들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엄마 전화기를 버리지 못하고 겨우 견뎌왔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한살 더 먹기 전에 죽은 엄마 두번째 생일이 오기 전에 전화기를 엄마한테 돌려줘야겠다 매번 다짐하곤 하는데 다짐하긴 하는데 -이문재 시인의 시 "엄마 전화기" 전문
이 시는 <창작과 비평> 2022년 겨울호에 실려있다.
시의 화자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 일년이 지났는데도 전화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마치 생명이 담긴 것처럼 붙들고 있다. 전화기가 죽으면 엄마를 두번 죽이는 것 같아 충전도 계속한다. 생전에는 무관심했던 엄마의 사생활을 떠난 후에야 관심 갖고 알아본다. 수백번 넘게 전화기를 들여다 보며 엄마의 힘든 사정에 공감하게 된다.
그날 이후 부끄러워서 눈을 들지 못했고 미안해서 전화기를 버리지 못한다. 매번 버려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이 시에는 앞 내용이 뒤 내용의 원인일때 이어주는 말 '그래서' 가 유독 많이 나온다. 시인은 '그래서'를 통해 화자가 엄마 죽음의 원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음을,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될 때마다 더 미안해하고 있음을 점층적으로 극대화 시켜준다. 휴대폰에 기대어 인간 실존의 쓸쓸함과 관계의 모순을 현재에서 과거, 미래까지 확장시키며 낱낱이 드러낸다.
세상은 많은 일들이 예기치않게 일어난다.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