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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선의 희망공간] 숨 쉬는 갯벌
  • 송형선 활동가
  • 등록 2025-03-03 07:52:10
  • 수정 2025-03-03 07: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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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천만습지가 흑두루미의 천국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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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봇대를 다 뽑았다. 벼농사도 유기농으로 짓고 그 벼들을 새들에게 전량 모이로 공급한다.{한겨레 21 2024년 3월 ‘비주얼 담당’ 흑두루미가 어디든 날아가도록(김양진 기자, 류석우 기자)}"라는 그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달려갔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안습지인 순천만 습지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인천에서 한걸음에 달려 순천만에 가보니 수만 마리의 온갖 철새들이 요란하게 저마다의 목청을 가다듬으며 노래하고 있다. 전 세계에 1만 6천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 Ⅱ급인 흑두루미가 무려 8,000여 마리나 순천만으로 찾아왔다.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들이 모이로 사람들이 뿌려준 벼를 먹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순천만에는 흑두루미 외에도 기러기, 오리 등 수백 종의 철새들 5만 마리가 겨울을 나고 있다. 2009년도에 순천만에 찾아오는 흑두루미가 80여 마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들은 뒤 지금 순천만의 모습이 기적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가능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자연적으로 두었다면 습지는 농경지로 바뀌고, 도심주거지 확장으로 습지배후 지역도 도심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실제로 순천시는 1992년 순천만 동천하구 모래 채취사업을 계획했고, 1996년에는 하천 직강화 사업을 추진했다. 만약 자연스럽게 순천시의 정책을 그냥 두었다면 순천만은 기적은커녕 생태가 죽은 오염된 습지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순천만을 지켜낸 데에는 시민들의 ‘운동’이 있었다. 순천의 환경활동가와 시민들, 그리고 전국의 환경단체가 연합하여 순천만 지키기에 나섰다. 전국 35개 환경단체가 나서서 골재채취의 허가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음을 밝혀 감사원에 신고하고, “제1회 순천만 갈대제”를 여는 등 반대운동을 펼쳤다. 하천 직강화 정책에는 순천만의 갈대가 오염된 하수를 정화처리하는 자연 정화처리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처음에는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람사르 습지 지정을 반대하던 지역 시민들도 하나둘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순천만의 모래를 채취해 돈을 벌어야 한다던 주민들도 순천만의 생태복원이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전봇대를 지중화하고 세금으로 벼를 사들여 두루미 먹이로 주는 일이 지역 경제에도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09년부터는 순천만 인근의 논을 ‘두루미영농단지’로 지정하고 농약을 쓰지 않는 100% 유기농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농사지어 거둔 벼를 흑두루미 먹이로 공급한다. 위와 같은 일을 순천시가 농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새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순천 시민들이 동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근 주민들은 ‘흑두루미지키미’라는 단체를 만들어 흑두루미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환경을 파괴하고 몇 푼 이익을 위해 동물들의 삶터를 망가뜨리고 있는 일이 빈번한 한국에서 순천만의 사례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관광자원'이라는 수식이 뒷맛을 개운치 않게 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순천의 시민들이 알게 되었고 그것을 위해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고, 시민들의 마음이 움직이자, 행정이 함께 움직여 민관협력 거버넌스(Governance)의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


순천만습지 보전 사례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내가 사는 인천지역 습지 환경을 지키는 일도 인천지역 모든 환경단체가 함께 참여해야 할 숙제이다. 얼마 전 인천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2단계 등재가 무산되었다. 인천 갯벌 중 가장 넓은 구역을 포함하고 있는 강화군이 등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갯벌을 둔 기초자치단체의 참여의향서가 필수인데 필수요건을 갖출 수 없게 된 것이다. 강화군은 ‘주민 반발’ ‘중복 규제’ 등을 이유로 등재에 동의하지 않았다. 순천만의 기적을 비추어보면 정말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 신안갯벌 다음으로 큰 갯벌이 강화갯벌인데, 그 강화의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지자체도 눈치 행정을 펼친 것이다.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충분한 보상책을 마련하는 등 여러 활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자체 스스로 노력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생태환경을 지키는 일도 결국 설득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먼저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내가 사는 인천 계양산 골프장을 온 시민들의 힘으로 막았던 인천 시민들의 사례가 있다. 더 관심을 가지고 순천만처럼 숨 쉬는 갯벌을 조성해야 한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 가로수들이 앙상하게 전지된 모습을 생각한다. 엊그제까지 날아든 새들이 보이지 않던 뭉툭한 나무들을 생각한다. 살아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의 만행은 아닐까? 그 나무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풍성한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에 앉아 쉬고 노래하던 새들은 어디에서 지친 날개를 쉬고, 먹이를 구할 것인가? 나무 한 그루, 풀잎 한 가닥, 새 한 마리를 볼 때 느껴지는 생각들이 참으로 다름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새들의 존재를 귀하고 고맙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새들이 없어져야 새 똥이 없어져 거리가 깨끗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가깝지 않은 생각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순천만의 기적을 보며 마음속에 무겁고도 큰 숙제를 갖게 된다. 


덧붙이는 글

마을기획 청년활동가 송형선은 사단법인]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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