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하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동네 골목에 자주 번지던 갓난아기 울음을 듣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 1년에 몇 명이나 보았는지 손가락으로도 셀 수 있는 정도다. 아기수레인가 싶어서 가보면 반려동물이 떡하니 앉아 있다. 어쩌다가 아기를 안고 가는 젊은 엄마나 아기수레를 만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아기와 눈을 맞춘다. 세상의 모든 평화가 다 깃든 아기 얼굴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엄청난 손해다. 마주한 아기 눈빛에서 얻은 마음에 온기가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세상사가 매말라가는 것이 아기들이 사라지기 때문인가? 아기들을 보기 힘든 것을 확장해 보면, 동네에서 어린이집들이 사라지는 것과 연결된다.
작년이었다. '다문화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동네에서 제법 큰 어린이집을 찾았는데 그곳이 어린이집이아니라 의류공장으로 바뀐 지 꽤 되었단다. 굳이, 외부를 새롭게 꾸미거나 간판도 꼭 필요하지 않아서 어린이집 모습 그대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단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 아이들이 없는데 그 큰 어린이집이 그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어린이집이 줄어드는 것도 초등학교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과 연결된다. 얼마 전, 입학생이 한 명뿐인 초등학교 풍경이 뉴스에 나왔다. 학교의 모든 직원이 귀하디귀한 한 명의 입학생을 위해 성대한 입학식을 치렀다. 전국에 입학생이 없어 입학식을 못 하는 초등학교가 약 157개교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신도심에는 아이들이 포화 상태다. 인천에도 송도나 청라, 논현지구 같은 곳이 그렇다. 구도심은 갓난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초등학교 학생 수도 줄어든다. 젊은이들이 선뜻 결혼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그나마 결혼한 신혼부부들은 대부분 신도심 아파트단지에 신혼집을 마련한다. 그러니까 구도심에는 아이들이 더더욱 보이지 않고 신도심으로 아이들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아이들이 대부분 신도시나 새로운 아파트단지에 몰려있으니까 아이들을 위한 시설들은 신도심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구도심에는 아이들과 연결된 가게나 건물들이 점점 사라진다. 물론, 아이들이 몰리는 신도심과 구도심에서 체감하는 정도가 다를 뿐, 신생아의 수가 줄고 초등학생들이 줄어가는 현실을 누구나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이들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은 밝아야 할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것과 같다. 아이들은 꿈꾸는 존재들이고 미래가 그 꿈을 받아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꿈들이 지금 사라지고 있다. 국가의 재정이나 시장에서도 노동자와 소비자가 줄어드는 것이어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던가? 실제 정부와 자치단체에서도 다양한 제도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발표하는 대책을 보면 왠지 가려운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힘을 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제일 어이가 없는 것이 '경제시작연령'을 낮추는 것과 '난임프로그램'을 출생정책에 포함한 것이다. 대학을 나와도 변변한 직장을 얻기 어려워 '모태솔로'로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을 보자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난임부부를 지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그 지원을 출생률 증가 정책에 포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난임치료'를 지원하는 것은 건강보험 차원에서 품어가는 것이 옳다. 그러나 출생률과 연계한 이유가 '국가제정지원' 중에서 전체적으로 큰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뭘 하고 있다는 생색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래를 꿈꾸지 못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을 포기한 청춘들에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는 일이 아닐까? 그런 사회를 구상하려면 출생률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전면적인 사회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서라도 지속적으로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이었다. 지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24세 전기공 청년이 발언한 내용을 다시금 듣게 되었다. 그 발언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중에 벌어진 퇴진집회 발언 자료에서 발췌한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9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일 때였다. 여러 발언자가 무대 위에 올랐다. 어르신과 초등학생 그리고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다. 그런데 뜻밖에 한 청년의 발언이 묵직하게 광장을 메웠다.
'저는 여러분에게 정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20살 넘자마자 전기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년이 넘게 일한 회사에서 무거운 것을 들다가 디스크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노동청도 가보고 산업재해 신청도 해보고 별짓을 다 했지만, 결국 회사에게 졌습니다. 최저임금 받는데 기름값 빠지고 방값 40만 원 빼고 나면 저축할 도니 10만 원도 남지 않습니다. 저는 서로 좋아해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결혼은 정말 꿈만 같은 일입니다. 저는 미래가 안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다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목구멍에서 뭔가 올라옵니다. 내가 왜 이런 슬픔을 느껴야 합니까?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퇴진할 것 같은데, 제 삶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이대로 20년, 30년 살라고 하면 저는 못 살 것 같습니다.'
그 청년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을까? 만약, 그 어려운 상황을 뚫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가 지금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내 간절한 바람처럼 그 청년의 삶은 긍정적으로 달라졌을까? 나는 그 청년의 결실을 해피엔딩으로 확신할 수 없다. 이유인즉, 많은 통계가 9년 전 청년들의 삶이 지금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동소득이 감소하고 비정규직이 늘어가고 있는 통계가 그때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출생률이 높아지는 건 신혼부부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신혼부부는 청년들의 사랑이 만든 국가의 기초단체다. 기초가 튼튼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마을마다 신혼부부가 자주 보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 흐르며 동네에서 아가들의 평화로운 얼굴과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미래를 이끌 청년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에 놓는 보여주기식 정책 말고 전폭적인 개혁이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신혼부부나 갓난아기에게 직접 지원하는 제도를 확충하면서도 청년들의 꿈을 위해 더 과감한 사회적 정책과 응원이 필요하다. 임시방편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젊은이들이 펼칠 미래를 지속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을 위한 출생률을 높이고 나라의 미래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진정한 정책이다.
마을기획 청년활동가 송형선은 사단법인]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