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진 골목 안 비질 소리가 다디단 새벽잠을 깨운다. 골목 양쪽에 나란한 빌라 사람들도 비질 소리에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이내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켜지고 수돗물 소리, 설거지 소리,화장실 변기 소리, 방문 여닫는 소리가 한꺼번에 골목 안으로 쏟아진다. 발 빠른 출근길 발소리 따라 두두두두 발소리 한 무리, 한 무리가 골목을 연이어 빠져나간다. 잠시 뒤 아무 일없었다는 듯 골목 안이 고요해진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비질 소리의 주인공인 저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느 날, 잠입하듯 어스름 저녁에 이사를 온 저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새벽마다 비질 소리로 아침을흔들어 깨우는 저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침뿐만이 아니다. 아저씨의 비질 소리는 밤낮이 없다. 흰 머리카락이 성성해서 호칭도 어르신이 어울릴 것 같은데. 늘,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과단단해 보이는 몸, 게다가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강인해 보이는 아저씨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군대에서 잃었다."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공장에서 잃었다." "조직폭력배였다."한쪽 팔이 없는 아저씨에 대한 풍문이 돌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풍문이 잦아들 만하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는 원인불명의 풍문이 돌았고 그때마다 아저씨의 귀에 닿으면, 금시라도 폭발할것 같은 불안감이 골목 안에 팽팽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동네를 떠다니는 가스 같은 풍문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저씨는 나날이 풍성해지는 풍문을 쓸어버리듯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열심히 비질했다. 세상사 심한 편견처럼 겉모습 때문에 행동이 불안해 보였지만, 아저씨는 없는 팔 때문에 겪는 장애가 없었다. 언제나 목소리가 힘찬 아저씨는 결국,몹쓸 풍문들을 말끔히 쓸어버리고 우리 동네 유쾌한 골목대장이 되었다.
가끔, 나는 장애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 아저씨와 막걸릿잔을 비운다. 마음을 탁 터놓고 속속들이 이야기를 나누어도 나는 한쪽 팔에 대한 궁금증을 묻지 않는다. 아저씨도 내가두 눈이 안 보이게 된 사연을 묻지 않는다. 오늘도 지하방 머리맡 비질 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현관문을 나선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내 인사를 들은 아저씨 골목을 쓰시며 내게 한 말씀 던지신다.
"작년처럼 올겨울도 심상치 않다."
"하늘을 보면,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릴 것 같다."
나는 추임새를 넣듯 고개를 끄덕인다. 넙죽넙죽 대답한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많이 내리던 작년 겨울을 생각한다.
올겨울도 역시, 골목에는 송이눈이 쌓일 틈이 없겠다. 흰 머리칼이 성성한 하얀 비질 소리가 온 동네를 흔들겠다. 아저씨의 비질 소리는 겨울 뿐만이 아니었다. 꽃잎 흩날리는 봄에도,햇볕 쨍쨍한 여름에도, 낙엽 수북한 가을에도, 멈춤 없이 번졌다. 아저씨의 비질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칭찬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쓴다. 벌써, 이사 온 지 다섯 해가되었으니 참 오래된 습관이다. 언젠가 통장이 아저씨를 훌륭한 시민 수상자 후보로 시청에 건의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자기 집 마당을 쓰는 것이 상 받을 일은 아니라 했다. 분명 아저씨말이 맞는 말이다. 그래도 거부하는 아저씨 행동이 아쉬웠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냥, 상 받으셔도 된다고…,"
"그러니까 받으시라고…,"
그날 저녁,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서 막걸릿잔을 채워드리며 줄기차게 설득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줄곧 빙그레 웃으며 유연한 듯 완강했다. 끝내 부상도 썩 괜찮고 상금도 괜찮은데 꼭 받으시라는내 속물근성만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뒹굴던 날이었다.
아저씨 말마따나 계절마다 쓸어야 할 쓰레기들이 다르듯 내 마음을 쓰는 아저씨의 비질 소리는 늘 같은 소리가 아니다. 적적할 때 함께 막걸릿잔을 비우며 나누는 이야기처럼 비질 소리는날마다 다른 소리가 되어 달팽이관을 후빈다. 얼마 전에는 장애인 차별에 관한 정책 제안 원고 마감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더니 비질도 하루만 멈추면 동네가 더러워진다며 나무라듯 내 게으름을깨끗이 쓸어주었다. 일주일 전에도 혼자 사시는 동네 할머니의 죽음 때문에 심각하게 자라는 어지럼증에 시달린 마음을 자분자분 쓸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비질 소리가 꿈속에서일어나는 장면과도 이어진다.
오늘 아침엔 산짐승 마당까지 내려와 먹을 것을 찾는 소리 들린다. 마당 곁 개집 안에서 누렁이 짖는 소리 들린다. 황급히 산속으로 돌아가는 산짐승 발소리 들린다. 확실히 승기를 잡은누렁이 짖어대는 소리 들린다. 마루를 정리하는 아버지 발소리 들린다. 밤새 소복이 눈 쌓인 마당에서 싸리비질 소리 들린다. 그 산 중턱, 시골집 뒤란 굴뚝에 쌓인 눈덩이 떨어지는 소리들린다. 쿨룩거리는 굴뚝에 연기만큼 아궁이에서 생솔가지 타는 소리 들린다. 엄마가 매캐한 연기 속에서 쌀 씻는 소리 들린다. 어젯밤, 체한 듯 내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소리 들린다.엄마 찾는 내 목소리에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 들린다. 바람 소리 털어내며 엄마 방문 열리는 소리 들린다. "엄마 손이 약손! 엄마 손이 약손!" 참나무 껍질 같은 손바닥이 내 배를쓸어주는 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