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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화가의 수요수필] 유난히 푸른 하늘을 보다.
  • 김형희 화가
  • 등록 2025-03-12 00:00:04
  • 수정 2025-03-12 06: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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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캔버스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여자
  • - 꿈, 사랑, 도전 이것이 인생이다.


1992년 3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인 나는 여러 가지 진로 문제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그해의 3월은 유난히 하늘도 푸르렀고 아름다웠다. 늘 내 생활에 얽매여 고개만 들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하늘이었는데 그날따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 일어날 사건을 예감이나 한 듯하다. 


그날은 이상하게 여러 가지 일들이 엇갈렸다. 현대무용 수업도 휴강이 되었고, 안양 아파트로 이사 와 집들이로 엄마 친구분들이 오시기로 한 일도 갑자기 연기되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한테 전화가 왔다. "어머! 형희야! 집에 있었네. 우리 만나자. 잘 됐다." 고등학교 동창은 고민이 있다며 좀 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조금은 나가기가 귀찮았지만, 뿌리칠 수 없어 만나기로 했다.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도움을 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그녀의 남자 친구가 나왔고, 얼마 뒤 나는 집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형희야! 내가 데려다줄게." 

"아니야, 우리 집 안양으로 이사했잖아. 버스가 더 빨라." 

"아니야, 나 때문에 나왔는데 내가 데려다줘야지." 

그녀는 남자 친구가 가지고 온 차를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1달밖에 안 된 초보운전이라 약간은 불안했고 나는 왠지 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그냥 좌석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손을 흔들며 정류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뛰어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데려다주겠다고 강력히 권유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방배동을 빠져나와 사당동을 지나 남태령 고개를 넘어 검문 초소를 지났다. 그리고 200~300m를 지났을까 차가 좌우로 흔들리자 당황한 그녀는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을 밟아 차가 튕겨 나가 중앙 분리대를 들이박고 말았다. 


충격에 잠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나가는 택시기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자동차 앞 좌석에 앉아 있던 두 친구는 걸어서 택시에 옮겨 탔지만, 뒷좌석에 있던 나는 기사 아저씨에 의해 옮겨질 정도로 중상이었다. 뒷좌석에 기대앉아 이동하는데 몸은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고 얼굴 이외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안양의 어느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어보는데 나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대답해 주었다. 큰 외상으로 피가 철철 흐르지도 않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자 나는 응급실 한쪽에 방치되어 있었다. 


한참 후 부모님이 달려오셨고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 나는 침착한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너무나 무서웠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 한 것은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막막한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너무나 놀라서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선생님, 우리 애 어떻게 된건가요?" 어머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절박하게 물은 질문에 담당 의사는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처방 아닌 처방을 내렸다. 그때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고 앰블런스를 구하기가 어려워 여기저기 알아보느라고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어렵게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는데, 그 당시 큰오빠는 신촌세브란스에서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었고 큰오빠의 친구 의사가 와서 진찰하더니 신경 손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니 신경의학 전문병원 영동세브란스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새벽길을 달려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하니 새벽 3시였다. 거리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동안 내 목뼈 속의 신경은 한 가닥씩 끊겨 나가고 있었다.


내 몸은 수리에 들어갔다. 


큰오빠 친구 의사가 미리 연락해 준 덕분에 응급실로 들어가니 의료진들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어서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누워서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목뼈가 부러지면서 중추신경을 건드려 사지 마비가 오게 되었고 부러진 뼈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침대에 누워 계속 X-ray를 찍으면서 뼈 맞추기를 수차례 했지만, 뼈가 으스러져 손상이 심해 수술이 결정되었다. 그날 아침 나는 11시간 동안이나 수술을 받았다. 목뼈 5, 6번이 으스러져서 골반 뒤의 뼈를 떼어 내 목뼈에 이식하는 큰 수술이었다. 내 몸은 로봇처럼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수술은 끝나고 나는 의식 없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가 눈을 뜨니 금방 수술을 마치고 의식 없는 환자들이 내 옆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중환자실 밖에서는 내 가족들과 나를 면회 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두 번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친구와 교회 분들, 그리고 학교 교수님들이 면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픔이라는 통증을 느끼 질 못했기에 내 상태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온 신경이 머리로 집중되어 정신적으로 무척 고통스러웠다. 중환자실은 밤, 낮이 없는 곳이라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계속해서 바뀌는 환자들, 또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간호사를 불러 대는 소리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도 호흡이 잘되지 않아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입안은 다 헐어 침을 삼키기에 고통스러웠고, 머리와 얼굴은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간호사 언니를 불러서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목을 수술해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말 순간순간 인내가 필요했다. 내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정말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루에 두 번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지만, 나 때문에 점점 초췌해지는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해서 괴로웠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일반 병실로 나가고 싶었다. 마침, 9일째 되는 날 그렇게 악몽 같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병원 입원 장면이 나오면 나도 저렇게 낭만적인 입원을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상상만 했을 뿐, 세상에 태어나서 병원에 입원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맹장 같은 가벼운 수술이 아닌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고로 이런 곳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난 이럴수록 더욱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애써 참으면서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김형희 /3월..집으로 가는 길 / 2015년/ 130.3 x 86.4 / Acrylic on Canvas


그렇게 만물이 소생하는 활기찬 3월에 싱그러운 나무 향기가 가득한 학교 캠퍼스가 아닌 소독 냄새로 찌든 병원에서 나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김형희 화가는 성균관 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했으며 CHA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 임상미술치료 전공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후, 자신이 설립한 장애인예술단체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를 거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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