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희 화가
끊어진 신경 덕분에 머리에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반응하지 않는 멈춰버린 내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본격적인 재활 계획을 세웠다.
오전 7시 30분: 물과 우유를 마시고 아빠가 ‘다리 관절운동’을 해주셨다. 관절운동은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를 타인이 관절마다 움직여주어 굳거나 석회질이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매일 2~3회 정도 해주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운동이다.
오전 8시: 관절운동이 끝나면 ‘서 있는 운동’을 한다. ‘스탠딩테이블’이라는 기구로 누워서 무릎, 배, 가슴을 묶어 세우는 운동이다.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다리의 근육 빠짐과 골다공증도 예방하며 어지럼증과 발목 뒤 아킬레스건의 수축을 방지한다.
나는 더 많은 아킬레스건의 이완을 위해 앞 발가락 부분을 높여주기 위해 따로 발판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서 있는 시간은 20분~1시간 정도가 적당하며 척수장애인의 경우 기립성저혈압으로 서 있을 때 어지럽거나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빨리 각도를 내려야 한다. 만약 그냥 놔둘 경우 서서히 눈앞이 흐려지고 의식을 잃을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오전 9시 30분: 세수를 하고 나서 아침 식사 후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작업치료’를 한다. 그 당시 나는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밥도 먹여 주어야 했고, 세수나 양치, 신변 처리까지 모든 일상생활이 타인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는 팔의 힘을 키우기 위해 작업치료를 시작했다. 쟁반에 수건을 깔고 콩을 흩어 놓은 다음 그것을 손가락으로 한 개씩 집어서 그릇에 담는 콩 줍기, 홈이 파여 있는 나무에 길쭉한 나무를 끼워 넣기, 나무 조각을 바닥에서 집어 올려 머리 위의 상자에 담기 등, 매일 병원에서의 일상이 집으로 옮겨졌다.
이런 운동 덕분에 숟가락 보조기를 사용하여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 숟가락 보조기를 사용했을 때 손목에 힘이 없어서 밥을 뜨면 입으로 가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래서 팔의 힘을 더 키우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손목에 감고 팔운동을 하여 팔 힘을 키웠고, 타이어 고무줄 잡아당기기로 팔과 몸통의 힘을 키웠다.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팔에 힘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는 상상을 하면서 운동을 하니 지루하지 않고 더 힘이 났다.
이렇게 휠체어에 앉아서 운동을 하고 나면 오후 1시가 넘는다. 그러면 약간의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컴퓨터 키보드 연습을 했다. 이제 손글씨를 쓰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컴퓨터가 필수였다. 무엇보다 내가 하루하루 뭔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매일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인터넷은 내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컴퓨터 무료 강좌로 컴퓨터 활용 능력을 키웠고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을 밤을 새워 가면서 독학한 결과 천천히 내 집, 홈페이지가 완성되어 가는 기쁨은 장애를 잊게 했고 또 다른 내 인생을 설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후 6시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빠와 다리 관절운동과 서 있는 운동을 간단히 하고 나서 방바닥에 매트를 깔고 매트 운동을 했다. 좌, 우로 구르는 운동으로 팔과 어깨의 반동을 이용하여 좌우로 왔다 갔다를 2,000번 정도 구른다. 이 운동은 어깨와 허리에 힘도 키워 주지만 장운동도 잘 되어서 배변 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구르고 뒤집기가 안 되어서 옆에서 조금씩 밀어주든가 한쪽 다리를 반대쪽 다리로 올려서 잘 뒤집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나중에는 힘과 요령이 생겨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단계는 누워 있는 자세에서 일어나 앉는 운동인데 경수 5, 6번이 하기에는 매우 힘든 운동이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행동들이 이제는 내 몸이 허락하는 움직임의 한계에서 방법을 찿아야 했다. 수천 번 실패 끝에 나는 옆으로 몸을 틀어서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앉기에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몸의 중심이 잡히지 않아서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앉아서 몸의 중심 잡기 훈련이 필요했다. 일어나 앉아 양팔을 옆으로 벌려서 몸의 중심 잡는 연습을 했다. 이 운동은 허리의 균형감각을 키우는 운동으로 휠체어에 앉았을 때 좀 더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된다.
나는 앉는 일에 성공한 후, 침대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길 때 약간의 보조로 나 스스로 옮기는 연습을 했다. 침대와 휠체어 사이에 엉덩이가 빠지지 않게 슬라이딩 보드를 끼고 옮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동작이 안되었지만 몸의 중심이 생기고 팔의 힘이 생기니 가능해졌다. 이 동작에 성공하기 전에는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길 때 아빠와 엄마가 함께 들어 옮겨야 했는데 몸무게가 늘기도 했지만, 전신 마비의 몸이라 축 늘어져 더 무거웠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는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엄마, 아빠 중 한 분만 안 계셔도 옮기지 못하니 부모님은 늘 나를 위해 대기 상태였다. 그것은 부모님에 대한 구속이나 나의 구속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모두의 자유를 위해 슬라이딩 보드를 엉덩이에 깔고 옮기는 동작을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이 외에도 재활운동은 끝없이 많다. 자기 몸 상태에 따라 응용해서 몸에 익히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나 일상생활에 적응이 된다. 장애를 벗어던질 수 없다면 빨리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 다른 사람의 도움 받는 횟수가 줄어들면 스스로 자유로와지는 것, 소위 전문가들이 말하는 ‘재활(rehabilitation)’이다.
매일 눈을 뜨면 멈춰버린 움직임의 자유를 찿기위해 나 자신과 싸워야 했다. 몸도 마음도 꿈도 희망도 불안정한 내 옆에는 자신들의 삶도 포기한 채 뒤돌아 눈물 흘리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추락하는 곳에는 날개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비상을 꿈꾼다.
▲ 김형희 / 비상 / 2009년/ 40.9 x 27.3/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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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화가는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한 뒤 CHA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 임상미술치료 전공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 후 장애예술 단체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설립하여 대표를 역임한 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