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시인의 시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인가' 전문
이 시는 김선우 시인의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인가》 에 실려있다.
사물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우리가 경계를 지우고 조금만 마음을 열어 놓는다면 그것들과 함께 호흡하고 더불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필자가 사는 북서울숲에는 벚꽃, 개나리꽃, 싸리꽃 등등 꽃들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했다. 매년 오는 봄이지만 탄생은 늘 기존과 다른 세계를 맞이하게 되고 경험하게 한다. 생명에 대한 경이와 함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시의 화자도 줄기 끝에서 꽃이 피는 순간 온몸이 현상의 일부가 되어 피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꽃"이 피는데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아득한지, 몸이 뜨거운지, 라고 표현했다. 독자들도 읽는 순간 그 숨 막힐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져 생명의 향연에 빠져들게 된다.
포스터의 소설 <전망 좋은 방> 에 "봄과 다투지 마라" 라는 문장이 나온다. 멋진 삶이란 봄처럼 새로운 현재를 감각하며 다투기보다는 세계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스미는 일일 것이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