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가 머무는 곳은 제주를 향해 출항한 배가 떠난 연안부두 옆이다. 서해를 나란히 바라보는 해안선 그 바다는 하루에 두 번 밀물이었다가 썰물이 되는 곳이다. 밀물이 먼저인지 썰물이 먼저인지 나는 모른다. 알파가 거기 있고 나는 언제나 맨몸으로 그곳에 간다. 정신이 흐려지는 날은 더 그리워서 간다. 그곳은 서해를 등지고 대문이 있다. 그 커다란 대문에는 얼추 28년째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알파잠수기술공사'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러 건물이 있고 다이빙 훈련장을 지나면, 넓은 잔디마당이 나온다. 그 마당 끝에는 만조 때 바닷물이 철썩이는 축대가 보인다. 제법 높은 축대 때문에 난간과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축대의 한쪽에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배가 정박해 있다. 나는 알파가 나를 위해 고압선 케이블을 감던 둥근 나무틀을 낚시 테이블로 만들어 놓은 축대 위 난간에서 낚시를 던진다. 망둥이가 잡히면, 릴을 빠르게 감는다. 갯지렁이를 바늘에 다시 낀다. 밀물이 썰물이 되어 갯벌이 드러날 때쯤, 나는 잠수사들이 가드 라인을 잡고 물 밖으로 나오듯 잔디마당을 가로지른 팽팽한 밧줄을 잡는다. 알파가 눈이 안 보이는 나를 위해 묶어 놓은 그 밧줄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쉴 휴게실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얼토당토않은 날이면 찾는 내 공간이다. 그 공간에 가득한 서해의 해풍이 알파가 일생을 호흡한 숨소리다. 망망한 바다에서 SOS가 날아오면 알파는 출동한다. 몹시 춥던 그 날도 배는 좌초되었고 알파는 빠르게 현장을 향했다. 물살은 빨랐고 바다는 어두웠다. 장비도 부족했다. 밤새 다행히 몇몇이 구조되었다. 그러나 실종자를 찾지 못했다. 해경이 단독 구조로 하루를 보낸 뒤 알파를 불렀다. 알파는 늦게 연락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실종자를 구해야 했다. 알파는 조류가 심한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는 뒤집어져 있었다. 바닷속 배 밑은 캄캄했다. 좌초되며 부서진 잔해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뒤집힌 배속에 공기주머니 바로 그 '에어 포켓'이 형성되어 있었다. 알파는 랜턴으로 여기저기를 비췄다. 알파는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목만 물 밖으로 내민 채 실종자가 거기 있었다. 얼굴은 좌초 때 잔해에 맞아서 코가 뭉개져 있었다. 정신은 혼이 나간 것 같았다. 동공이 풀린 상태였다. 알파는 얼른, 말을 걸었다. 반응이 없었다. 와중에 자기 나이가 일흔이라고 했다. 그 대답을 들은 알파의 머리에 불빛 한 가닥이 반짝, 켜졌다.
"손주 있어요?" "보고 싶지 않아요?"
그제야 실종자는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 힘을 주었다. 알파는 침착하게 실종자에게 말했다. 내가 손주 보게 해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장비 가지고 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바다 위 해경 구조대가 갑자기, 바빠졌다. 장비를 가지고 들어간 알파는 실종자에게 산소마스크를 착용해 주고 마우스를 입에 물게 했다. 입으로만 숨을 쉬어라. 절대 코로 숨 쉬면 안 된다. 몸에 힘을 빼라 내가 뒤에서 밀어주겠다. 그러나 부유물들은 탈출구를 막고 있었다. 실종자는 기진해 있었다. 문을 막고 있는 냉장고를 실종자는 감당할 수 없었다. 알파의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알파는 실종자 머리를 물속으로 힘차게 밀어 넣고 두 발로 실종자를 밀어붙였다. 실종자가 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알파는 실종자의 허리춤을 잡고 온 힘을 다해 오리발을 저었다. 끝내 숨비소리를 내듯 수면 위로 두 사람이 떠올랐다. 해경들은 재빨리 실종자를 건져 올렸다. 이내, 알파도 배 위로 올랐다. 실종자는 무려 72시간 끝에 구조되었다. 에어포켓 그 공기주머니가 세상 밖으로 실종자를 떠오르게 했다. 그 고깃배에 존재한 공기주머니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배가, 몇 배는 더 큰 배가 한참을 떠 있던 그 배가 아이들을 그 많은 아이를 삼켰다. 손전화기 벨이 SOS를 보낼 때 국가안전 시스템은 고장이 나 있었다. 꺼져 있었다. 좀처럼 수리의 속도를 내지도 않았다. 켜지지도 않았다. 그 시간에 공기주머니는 부력을 잃어갔다. 알파는 다이빙벨의 종을 울리며 달려갔다. 아이들아 일흔 살이 넘은 실종자도 이른 두 시간을 견뎠다. 기다려라. 힘내라. 버텨라. 제발,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나 관료들은 다이빙벨의 종소리가 울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대 놓고 자유로운 활동을 막아 버렸다. 결국, 다이빙벨을 쫓아 버렸다. 알파도 끝내 눈물을 뚝, 뚝, 흘리며 쫓겨나왔다. 그날부터였다. 알파의 달력에는 그날이 없다. 그 큰 에어 포켓에 가득했던 아이들의 절규가 물거품을 일으키던 그 날이 없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터지듯 물거품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그 날이 없다.
-다음주에는 「고기 한 판 그리고 인천항」이 게재됩니다
손병걸 시인은 2005년 부산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푸른 신호등』,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통증을 켜다』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가 있고 산문 『열 개의 눈동자를 가진 어둠의 감시자』 『내 커피의 농도는 30도』가 있다. 『-구상솟대문학상』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인국무총리상』 『민들레문학상』 『중봉조헌문학상』을 받았다.